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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Oct 28. 2020

고립이 때론 좋습니다.

-스마트 폰을 부실까?

          

 어렸을 때 TV 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악기를 전공하면서부터 나에게 주워진 자유시간이 줄어든 데다가 연습하고 학원 몇 개 다녀오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기 때문에 주말에 몰아보는 TV 시청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찌나 집중해서 봤던지 TV를 볼 때는 누가 불러도 모를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에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은 "저놈의 TV를 없애버리던지 해야지."라는 말을 자동적으로 하셨다.   


  

  지금의 아이들은 예전보다 TV를 보지 않는다. TV가 아예 없는 집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TV보다는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컨탠츠를 소비하는 문화가 대중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이 시대를 사는 부모들은 "저놈의 핸드폰을 없애버리던지." 해야지라는 말을 자주 할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확실히 아이들이 예전보다 아는 것이 참 많아졌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손가락 몇 번만 돌리면 수십수백 가지의 정보가 쏟아지는 사회에 사는 아이들은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를 고르는 게 일이 되었다.      


 얼마 전 카프리스(caprice) 소품곡을 배우고 있던 학생에게 카프리스 또는 카프리치오에 대해 알아 오라고 숙제를 낸 적이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뭐든지 1분 안에 답이 척척 나오는 세상에서 그 정도는 쉽게 찾아오겠지 했던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아이가 내게 준 대답은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악기를 배운 지 5년이 넘어가고 음악도 너무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이게 무슨 엉뚱한 대답인가 싶어 원인을 찾아보니 아이는 원래 하던 대로 검색창에 카프리스라는 단어를 쳤고 한 페이지 안에 다양한 정보들과 만났다. 아이는 그중에서 영어 사전에 나온 단어를 ‘선택’ 한 것이다.     


 화면에 올라온 정보들을 조금만 자세히 보면 내가 알아 오라고 한 카프리스는 음악 형식 중에 하나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그 짧은 시간도 아이에게는 귀찮은 시간이었나 보다. 어릴 때부터 각종 SNS와 수많은 정보들에 노출된 아이들은 어느새 모든 게 귀찮아졌다. 검색창에 단어를 치고 알맞은 답을 찾기만 하면 되는데 알맞은 답이 뭔지 생각하는 시간조차 힘겨워진 아이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의 대답을 듣고 문득 생각해보니 나도 깊게 집중하는 시간이 예전보단 현저히 줄어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전공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연습실 속 고립을 스스로 선택했던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어찌나 산만한지. SNS에서 지인들 안부를 확인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한두 시간은 금방 간다. 독립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해보겠다며 TV를 사지 않은 것이 의미가 없을 지경이다.


 고립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무리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기 십상이고 특히 요즘 같이 사람들의 관심이 경제적 부로 이어지는 시스템 속에서는 고립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립은 깊은 사유와 더불어 어떤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      


 연습실에서 엉덩이에 땀띠 나도록 앉아서 악보를 보다 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이 들리는 경험을 한다. 고립은 사유로 이어지고 사유는 끈기로 이어지며 끈기는 성취로 이어진다.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일련의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건대 가끔은 고립을 선택해보길 권한다. 일어나자마자 몇 개의 SNS와 검색창을 돌고 유튜브 영상을 몇 개보니 하루가 지나버리는 나날들 보다는 훨씬 유익할 것이다. 


그럼 나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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