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 The symphonies >
바람이 차가워지면 슬슬 느낌이 온다.
지. 쳤. 다.
끼니때가 되면 배가 고프듯이 1년이 끝나가면 도망가라는 신호가 온다. 여행을 가던 집에 틀어박히던 나름의 방법으로 매년 잘 이겨냈는데 올해는 이도 저도 힘들다. 이미 틀어박혀 있는 상황이라 더 틀어박힐 것도 없고 여행은 갔다 와서가 더 문제다. 이렇게 되면 자주 쓰는 카드를 꺼내 드는 수밖에 없다.
나는 에너지가 고갈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낭만적인 곡을 찾아 듣는다. 그런 의미에서 차이콥스키 음악은 믿고 쓰는 카드다. 정말 눈물 나게 낭만적이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이 세상 음악이 아닌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지친 마음이니 딴 세상 음악으로 달래는 게 맞지, 싶다.
차이콥스키의 나라 러시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차이콥스키를 비롯하여 라흐마니노프, 림스키 코르사코프 등 러시아 작곡가를 좋아하고 피아니스트 키신이 한국에 왔다 하면 열 일 마다하고 쫓아가는 나로서는 당연한 순례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러시아의 추운 날씨만큼이나 아찔했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흥분 상태였던 나는 러시아의 호텔 직원에게 첫날부터 강렬한 한 방을 먹는다.
“나는 지금 전화 통화를 해야 해. 질문은 나중에 해줄 수 없겠니?”
궁금한 것도 많고 질문도 많았던 동양 여행객은 어딜 가나 욕먹기 쉬운 나라였다. 유일하게 친절했던 아저씨는 사진을 찍자고 하더니 한화로 약 3만 원을 강탈해갔다. 비행기 안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볼쇼이 발레단에서 실제로 있었던 염산 테러에 관한 이야기였을 때 알아챘어야 했었다. 낭만적인 곡을 쓴 사람이 태어났다고 해서 그 나라 자체가 낭만적인 나라는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러고 보면 차이콥스키의 인생도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중 그의 사랑 이야기는 특히 막장 중에서 막장이요. 비극 중의 비극인데 그 시작은 차이콥스키가 매우 매력적인 동성연애자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차이콥스키는 안토니나라는 여성의 끈질긴 구애에 못 이기는 척 결혼했다. 그리고 평생 그녀를 피해 도망 다니는 인생을 살았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죽고 싶어 진다고 지인들에게 말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죽고 싶은 그를 구해준 건 13년간 경제적 지원을 해준 폰 메크 여사였다. 1,00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단 한 번의 만남도 갖지 않은 진정한 플라토닉 한 사랑이었다. 물론 나중에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고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렸다는 뒷이야기가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폰 메크 여사의 경제적 지원으로 차이콥스키는 그의 아내에게서 잘 도망쳐 다녔고 그의 아내는 점점 미쳐갔다. 안토니나는 차이콥스키를 평생 괴롭혔다고 한다. 사랑 고백을 했다가도 불쑥 찾아와 협박하고 이혼을 해줄 것 같이 말하다가도 금방 철회하며 차이콥스키가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를 쫓아다녔다. 심지어 그녀는 차이콥스키보다 오래 살았다.
어딜 가도 불친절하고 어딜 가도 무표정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 모스크바 시내를 걸을 때였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거리 전체를 채웠다. 그 블록을 지나니 걸어 다니는 그것조차 신기한 아이가 자기 키만 한 바이올린을 메고 아장아장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씩 하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차이콥스키가 지옥과 같은 현실의 아픔 속에서 누구나 들어도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유일한 피신처가 음악이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이 괴로울 때면 잠시 도망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버티고 버티다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는 것보다,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가는 게 낫지 않은가. 할 일이 쌓여있지만 “에라 모르겠다 배 째라!” 하며 도망가기로 했다. 오늘은 머리가 찡할 정도의 달달한 브라우니에 아이스크림 한 덩어리를 올려서 입속에 욱여넣고 차이콥스키 심포니 전곡이나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