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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Oct 27. 2020

글을 쓰기로 했다.

-미니 디스크를 아시나요?

 브런치의 글들을 읽다 보니 사람들마다 글쓰기의 이유가 참 다채롭다. 자신이 알고 있는 소소한 지식들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도 하고 삶의 역경을 감내하고 이겨내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하며 자신의 글에 대해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고 소통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음악을 전공하였지만 딱히 전문적이라 할 수 없고 삶의 역경을 극복했다기엔 아직 인생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글에 대한 누군가의 피드백은 두려운 변두리 음악인은 왜 글을 쓰고 싶은 것일까.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시작점은 오래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독립을 준비하며 짐을 정리할 때의 일이다. 말 그대로 잡다한 것들이 가득한 서랍에서 언제 처박아놨는지 기억에 없는 미니 디스크(MD) 여러 장이 나왔다. 미니 디스크는 일본에서 발명한 음원 저장 매체로 휴대성이 떨어지는 CD를 대체하자는 포부를 가지고 1990년대에 등장하였다. 녹음기가 있는 데 미니 디스크를 구입하게 된 건 미니 디스크에 녹음을 하면 당시의 녹음기보다 음질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레슨 시간에 녹음하는 걸 선호하셨던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고 있던 터라 매 레슨 시간에 녹음을 하고 집에서 다시 듣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때였는데 MD의 등장은 나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레슨 시간에 혼나는 것보다 녹음된 연주를 듣는 게 더 고역스러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연주를 녹음하기 전에는 내가 어떻게 연주를 하고 있는지 인식을 잘못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 오르면 온 몸을 조이는 긴장과 표현할 수 없는 흥분으로 아드레날린이 잔뜩 분출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연주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동시에 체크를 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주가 매번 만족스럽냐. 아니다. 연주를 하고 나면 항상 뭔가 아쉽지만 “다음에 더 잘하자.”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연주를 녹음하기 시작한 후로는 나의 모든 잘못과 매일 마주해야 했다.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치부책을 꺼내 보는 심정이 어떤지 상상해보라.     


 미니 디스크가 녹음이 잘된다는 소문을 듣는 순간, 나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미니 디스크 플레이어를 샀다. 녹음이 잘된다는 것이 소리를 잘 잡아낸다는 거지 못 한 연주를 잘한 것처럼 들리게 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라는 생각을 사기 전에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소문대로 미니 디스크는 녹음이 아주 잘 되었고 나는 더 정교해진 치부책과 마주하게 되었다.      


 요즘 음악대학 학생들은 자신의 연주를 녹음하는 것보다 영상으로 남기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연주 영상을 모아 유튜브에 올리기도 하고 자신의 개인 SNS에 올리며 스스로를 홍보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들의 다양한 재능이 신기하고 놀랍다. 영상 편집이나 음향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의 핸드폰으로 녹화한 것들을 그대로 올리는 경우도 많은 것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연주를 기록하고 그것을 마주하는 것은 일종의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주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지인들을 보면 예전보다 훨씬 더 퍼포먼스에 신경을 쓴다. 연주를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찌푸려지는 표정을 고쳐보려고 노력도 하고 팔의 움직임이나 몸의 쓰임도 연주 영상을 보면서 세심하게 연구한다. 연습실에 박혀서 몇 시간씩 연습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찍어 모니터까지 하는 요즘 애들을 보며 연주로만 먹고사는 길을 빨리 포기한 나 자신이 얼마나 기특한 지 모른다.     


 예술가들은 부끄럽고 괴롭지만 자신의 부족함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훈련을 통해 알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우선 지금의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글쓰기를 꾸준히 해보겠다고 결심을 한 것도 어쩌면 이런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글쓰기도 미니디스크처럼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기록해주고 그것과 마주하게 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늦은 나이에 독립한 초짜 독립인으로서 지나온 일들과 현재의 일들을 기록하며 앞으로의 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른이 되어야 하는 나이에 마냥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면 순전히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글쓰기라고 보면 되겠다.      


 글재주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생각들을 다수의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게 아직은 어색하여 글을 지웠다 다시 썼다 난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롭게 용기를 내본다. 마주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해봤으니 이번에는 제발 얼굴 뜨거울 일이 많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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