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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Jan 19. 2021

슬기로운 아파트 생활

-층간소음에 대하여.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문을 열었는데 문에 쪽지가 붙어있었다.


내용인즉슨 "누군가는 쉬는 주말 아침에 악기 소리를 내는 것은 좀 아니지 않으냐"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호수라도 적혀있으면 나의 이야기를 좀 해보련만 어디 사는 어떤 분이 쪽지를 남기신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내가 아니라고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라도 하소연을 좀 해보자면, 나는 주말 아침에 연주를 하지 않는다. 토요일엔 수업이 있고 일요일엔 유일하게 늦게 일어나는 날인데 아침부터 악기 연습을 할리 만무하다. 두 번째, 방음시설을 구비했다. 저렴한 재질의 방음부스 말고 굳이 돈을 더 들여서 24시간 연습이 가능하다는 방음부스를 선택한 것에는 이웃에게 피해를 안 끼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이런 오해를 받다니.


방음부스 설치는 인테리어 하는 것보다 시공이 더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이사 올 때 이웃에게 떡을 돌렸었다. 공사 소음이 일반 인테리어보다 더 크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넘어가기가 미안한 마음이었다. 뭐라도 돌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 되어 마음의 짐으로 돌아왔다. 나는 음악 하는 사람으로 동네방네 알려졌나 보다. 어디서 악기 소리만 나면 민원이 오기 시작했다. 민원이 시작된 것은 6개월 전쯤부터였는데 아마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이번에도 그냥 참을까 하다 관리실을 찾아가 이러저러한 사정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관리실 직원분들은 층간소음문제로 이미 많은 민원을 받으시는 듯했고 쪽지의 주인을 찾아 직접 해결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분명 처음에는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데...'정도의 감정이었는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라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아파트 전체를 돌아다니며 쪽지 쓴 사람이 누구냐고 찾아보고 다녀야 한다고?


예민한 귀를 갖기 위해 꽤 오랜 시간 훈련한 사람으로 층간소음과 관해 항의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본다면, 소리의 전달은 사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전달 방향이 다르고 진동이 동반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전달 거리도 달라진다. 바로 윗집에서 나는 소리 같아도 근원지는 옆라인일 수도 있고 3층 위일 수도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일 수도 있다. 또한 소리는 온도, 기압, 습도 등의 여러 가지 요소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서도 전달되는 방향이 바뀔 수 있다. 그 밖에도 소리의 전달과 관련하여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상황이니 사실 아파트라는 생활공간은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굉장히 힘든 구조이다. 예를 들어 스피커를 벽 쪽으로 향해 놓고 음악을 틀어놓는다고 해보자. 그 소리가 어디까지 전달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장담하는데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여러 집을 통과할 것이다. 결국 소리에 반응하는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사실 바로 위아래가 아니라 어디에서든 거슬리는 소리를 만나면 평생이 괴로울 수 있는 것이 아파트 생활이다.


나는 결국 엘리베이터에 글을 적어 붙이기로 했다. 방음시설 사진을 첨부한 장황한 글이었다. 내가 봐도 너무 길고 구구절절했지만 지난 6개월간 받은 오해를 조금이라도 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요점은 '저는 아닙니다.' 이 단 한 구절인데 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의지가 앞섰나 보다.


막상 엘리베이터에 글을 붙여놓고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엘리베이터에 ' 담배 피우지 마세요! 시끄럽습니다! ' 등등의 감정적인 글을 볼 때마다 엘리베이터라는 공동의 공간에 저런 식의 감정적인 글을 붙이는 것도 좀 아니다 싶었던 사람으로서 '너도 그 사람들과 별 반다를 것 없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하루 뒤, 나는 내가 쓴 글 아래에 조그만 포스트잇이 붙여진 걸 발견했다. 주말 오전에 악기 소리를 낸 것이 아무래도 본인 같다는 글이었다. 다른 사람이 오해를 받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하고 앞으로는 낮시간을 이용해 연습을 하겠다는 사과의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내 글만 읽고 그냥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있는데 본인이라고 나서 준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6개월간 오해 좀 받았으면 어떠랴. 나는 포스트잇에 쓰인 몇 줄의 글로 그간 쌓아왔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우습다. 별것 아닌 것이 큰일이 될 수도 있고 큰일이 될뻔한 일도 별게 아닌 것이 되는 게 종이 한 장 차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라는 생활공간에 갇혀 생활하다 보면 힘든 마음들이 우울이 되고 우울한 마음들이 화가 되어 여기저기 잘못된 방향으로 분출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너의 탓이라고 확신했는데 사실 오해일 수도 있고 내 탓이지만 사과하는 것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화가 또 엉뚱한 곳에서 터지기도 한다. 


아파트라는 생활공간에서 슬기롭게 사는 방법은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건 이 생활공간에서 계속 살 거라면 섣부른 판단이 오해를 낳고 그 오해가 화를 부르고 감정적인 화가 분노가 되는 악순환은 꼭 피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는 방법은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은 단 몇 줄의 상냥한 글로도 당신 이웃의 마음을 평온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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