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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Feb 16. 2021

부유하는 현대인들의 초상 [클럽하우스]

-멀고도 험한 인간관계의 길.

밸런타인데이인 데다가 연휴 마지막 날인 휴일에 나는 자의로 클럽하우스의 노예가 되었다. 밥도 안 먹고 내리 5시간을 이방 저 방을 떠돌며 듣고 가끔은 떠들었더니 현기증이 살짝 난다.


이미 여기저기서 기사화가 되어 클럽하우스에 대해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여기서 한번 더 설명하자면 클럽하우스는 음성을 기반으로 한 SNS이다. 현재는 아이폰 유저들만 사용할 수 있고, 초대장을 받아야 입성이 가능한 상태이다.


어디서 유행한다는 소리만 들으면 귀가 쫑긋해져서 뭐든 해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게 클럽하우스는 몹시 해보고 싶은 SNS였다. 하지만 인싸도 아닌 데다가 지금 있는 SNS도 다 죽어가는 상태인 사람은 클럽하우스에 입성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주변에 아이폰 유저가 많지 않은 데다가 SNS을 하나의 마켓으로 보는 지인들은 '이미 넘치는 SNS를 또 왜 하냐?' 또는 "그게 뭐야?"라는 물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해보고 싶은 건 꼭 해야겠어서 나는 왠지 클럽하우스에 입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꼬시기 시작했다.  인스타에 사진을 한 달에 한번 올릴까 말까 한 지인은 썩 내켜하지 않는 눈치였다. 순전히 나를 입성시키기 위해 억지로 입성을 해야 하는데 내키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시스템 내에서 탈퇴가 안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설득하기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 아무도 몰랐었어서 나는 무사히 클럽하우스에 입성할 수 있었다.




막상 입성하고나니 뭘 어째야 할지 난감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잠깐의 인연이 있던 분이 모더레이터로 있는 방을 찾았다. 여러 가지 조언을 받고 방을 나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관심사가 다양한 사람에게는 정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넘치는 곳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여기저기에 포진되어있보니 듣기 힘든 이야기들도 많이 들을 수 있고 예술가들은 클럽하우스를 통해 잠재적 후원자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자신의 영업 노하우를 아무렇지도 않게 터놓는 CEO부터 유명 연주가나 일러스트레이터 등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주는 다채로운 신세계가 펼쳐진다. 여기저기 구경만 하고 다녀도 몇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방을 돌아다니며 듣기만 하다 보니 말도 해보고 싶어 졌고 슬슬 손을 들고 몇 마디 하기 시작했다. 말이 한번 트이니 그다음부터는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손부터 들고 봤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말하고 듣고 이걸 5시간을 했다. 배터리가 다 돼서야 겨우 핸드폰을 내려놓고 멍하게 있다 보니 가시감이 밀려온다.






가족이란 개념이 약해지기 시작하고 1인 가구의 수는 점점 는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혼자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와 오랜 인연을 맺는 것이 힘들어지는 세상 속에서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SNS가 큰 인기를 누리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쳐가는 인간관계가 난무하고 좁고 깊지만 피곤한 인간관계는 힘들어하는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막상 주변에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사람을 못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점점 많아진다.


나는 클럽하우스가 마치 영화 'HER'에서 나왔던 목소리 AI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인 것 같으나 실제 하지 않은 존재. 딱 그런 느낌이었다. 


단편적인 인관관계만 만드는 것 같고 사람의 목소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로서는 클럽하우스라는 존재 자체가 내 감정을 매우 복잡하게 한다는 고민을 이름이 기억 안나는 방에 들어가 털어놓았더니 스쳐 지나가는 어떤 분이 이 앱의 사용은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사용도가 달라지는 것이니 즐겁게 이용해 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고민과 해결책을 동시에 주는 SNS라니 참 신선하기는 하다.






클럽하우스 안에서의 인간관계도 사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꽤 많은 방들이 24시간 또는 정기적으로 꾸준히 열리고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적극성을 띄고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 


클럽하우스에 대해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으며, 벌써부터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조언해준 이름 모를 분의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도구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남들은 이곳의 초대권을 돈을 주고 사보겠다고 난리라는 기사를 봤는데 어찌 된 것이 나의 지인들은 한번 해보겠냐고 연락을 친히 줘도 싫다고 딱 거절한다. 페북이니 인스타니 세상이 난리일 때도 '난 별로.'라고 이야기하는 심지 곧은 지인들이 있어 바람만 살짝 불어도 이리저리 휘둘리는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든 그렇지만 이 SNS를 고작 며칠 사용해보고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다만 기존의 SNS와 새로운 형식을 취하는 것은 틀림없고 이것이 주류가 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경험에 목마른 분들에겐 한 번쯤 사용해보길 권한다. 다만, 입성보다 힘든 탈퇴가 있다는 것은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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