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음 Feb 14. 2021

인격과 재능을 구분할 것인가.

-공인으로서의 의무는 어디까지?

꽤 오랜 기간 생각을 한 문제이나 답을 얻지 못 질문이 있다. 예술인의 인격과 작품을 구분해서 봐야 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다. 인격과 재능을 같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종종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랑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성격을 짐작하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다.


"너같이 연주한다."라는 말을 선생님께 들었었을 때는 나도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신기한 게 연주하는 걸 들으면 아이들의 성향이 대충 파악된다. 까부는 아이인지, 성격이 급한지, 수줍음이 많은 아이인지... 등등.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도 인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된다. 너에게 나오는 소리에 네 성격이 다 드러나니까 좋은 사람이 되라는 훈계를 늘어놓는다. 물론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저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이지만 말이다.


나는 사람이 만드는 모든 예술행위에는 그 작품의 가치가 어떻든 간에 그 사람의 영혼이 깃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아이들에게도 서슴없이 그런 잔소리를 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의 관념을 재고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피아노 연주자 백건우 씨와 그의 배우자 윤정희 배우의 이야기에 관련된 기사가 엄청 쏟아져 나왔다. 그 기사의 내용은 백건우 씨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윤정희 씨를 방치하였다는 뉴스였는데 그 후로 반박기사와 양쪽의 지인 인터뷰까지 연속해서 보도됨으로써 그야말로 난타전이었다. 백건우 씨의 가장 최근 앨범인 슈만 앨범을 좋게 들었던지라 개인 SNS에 감상평까지 남긴 나로서는 솔직히 적지 않게 충격적인 뉴스였다.


나는 사실관계야 어찌 됐던 개인사를 온 세상이 아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음악적 재능과 그 사람의 인격을 어디까지 연관시켜야 하나라는 내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게 되었다.


예술가의 재능과 인격의 관계를 연관 짓는 것이 옳은가? 예술작품에 사람의 영혼이 깃든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의 도덕적인 잘못은 너그럽게 이해해주어야 하는가? 공인으로서의 의무는 어디까지 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나는 매우 유사한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안타까운 병으로 요절한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가 그 주인공이다.


이 둘의 만남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유명한 러브스토리 <?>인데, 매우 비극적 러브스토리라는 것이 핵심이다.


재클린 뒤 프레는 꽃다운 23세에 유태계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 불꽃같은 사랑의 열병에 빠진다.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교까지 개종하며 그와 결혼을 선택한 그녀는 20여 년 후 매우 슬픈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배경은 이렇다.


성공과 출세에 강한 열망이 있었던 다니엘 바렌보임은 그녀와 결혼 후 그녀와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여행을 다녔고, 그녀를 다그쳐가며 연주의 완벽성을 추구했다고 한다. 그들은 계속 승승장구했고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재클린이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연주자에게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불치병에 걸리게 되자 다니엘은 그녀를 방치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러시아계 피아니스트 엘레나 바쉬퀴로바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했고 자녀까지 낳게 된다.


죽는 순간까지 그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한 재클린은 죽을 때까지 다니엘 바렘보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이야기했다고 전해져 이 이야기가 더 슬퍼진다. 심지어 그녀의 묘비엔 다니엘 바렌보임이 사랑했던 아내라는 글귀를 새겼으니 말 다 했다. 다니엘 바렘보임은 그녀가 아픈 와중에도 이혼을 요구했다고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꽤 유명한 이야기이고 바렘보임의 뛰어난 재능과 별개로 그의 행실 <?>에 대해 언짢아하는 클래식 음악 팬들이 많다. 배우자의 불륜과 관련하여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반면에 그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펼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그가 천하의 나쁜 바람둥이라고 하기엔 두 번째 부인과 지금까지 사이가 좋다는 점, 재클린의 임종을 지켰다는 점을 예로 들어 그를 무조건적으로 폄하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변호한다.


여하튼 다니엘 바렘보임을 제외하고라도 현대의 예술가들도 수많은 스캔들과 도덕적인 문제들이 이슈가 되는 경우는 수없이 많았다. 그들의 빛나는 재능은 악마가 주는 것일까? 싶을 정도의 충격적인 스캔들도 왕왕 접하는 터라 교육자적 입장에서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많은 것이다.



부도덕한 문제를 가진 예술가들의 아름다움 예술작품들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들의 예술작품을 어린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옳은가?



예술가들의 영혼이 그들의 작품에 깃든다는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매우 복잡하고도 어려운 이슈이다. 나의 전제를 단순히 해석하면 그들의 부도덕성은 그들의 작품에 깃들고 그들의 작품을 보거나 듣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 나는 것인데 그들의 작품이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건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백건우 씨의 슈만 앨범 숲 속의 정경, op. 82 중 III, 고독한 꽃을 들으며 이번 스캔들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본다. 좋은 사람이 좋은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것으로 단순히 설명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이 문제 아니고도 이미 세상은 너무 복잡하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 시대의 자기 계발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