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한국으로 귀국한 나는 30곳의 작곡가 박물관을 방문하고 돌아온 경험을 남들과 나누고 싶어 브런치 작가 신청서를 냈다. 그렇게 2024년 7월 23일부터 2025년 2월 25일까지 총 30편의 작곡가 박물관 기행문이 완성되었다. 단순히 글 한 편당 5천자라고 계산해도 무려 15만자의 글이다. 600자에서 700자 정도가 종이책 한 페이지니 약 250페이지 정도를 쓴 셈이다. 때때로 내 친구들조차 '브런치 치고 글이 너무 길다' 라며 내 글을 미뤄두고 읽지 않았는데, 초반에는 엄격하게 그 '박물관'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그 작곡가의 인생이나 작품 이야기도 함께 섞어서 적다 보니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정보량이 쏟아지는 것으로 느껴졌을 듯하다. 박물관을 방문한 주관적 감상이라기에는 정보가 많고, 정보를 전달한다기에는 주관적이었던 글이었는데도 열세 명이나 되는 독자들이 브런치북에 라이킷을 눌렀고 그보다도 많은 독자들이 주기적으로 각 글에 라이킷을 남기고 가 주셨다. 그렇게 길지도 않은 글이었는데도 일주일에 한 번밖에 발행하지 않다 보니 무려 7개월이 걸렸다. 그 7개월간 라이킷을 눌러 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일주일에 단 한 편의 글만 발행하면 되는 일이었는데도 그 한 편을 발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때로는 어떻게든 쓸 내용을 쥐어짜내려 머리를 싸매고도 5천자밖에 쓰지 않았지만 때로는 내용을 줄이려 애를 썼는데도 3만자가 넘는 글이 나왔다. 일주일에 한 편의 글만 발행하면 되도록 주 1회 연재로 설정해 놓았었는데도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매일 글을 발행하는 분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정기연재를 하는 모든 작가님들께 존경을 보낸다.
나름대로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박물관을 평가해 오고 있었는데, 어떤 박물관에서는 그 평가 기준이 무참히 깨지기도 했다. 내 글을 읽으며 여러분들이 직접 내린 평가는 나와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특히 작곡가 박물관이라면 그 사람의 작품과 작곡 기법에 대한 해석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전체적인 박물관들에 대한 평가가 나와 정반대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원래는 에필로그에서 내가 가장 만족했던 박물관들을 뽑아서 소개하고 싶었지만 박물관 전문가도 아니면서 좋은 박물관과 그렇지 않은 박물관을 가르는 것이 우습게 느껴진다.
이 글을 쓴 것은 기본적으로는 작곡가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작곡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평생 몇 번이나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유럽 여행을 가면서 작곡가 말고 볼 것도 없는 소도시들에 다녀오기는 쉽지 않다. 라이프치히처럼 대도시에 속하는 도시들조차 예쁘거나 관광 명소가 따로 없다면 여행 동선에 쉽게 넣을 용기를 낼 수가 없다. 트립어드바이저나 구글 맵스 리뷰를 봐도 각각의 박물관 규모가 어떤지, 한국어나 영어가 지원은 되는지, 정확히 어떤 소장품들이 전시되는지, 주변 동네 분위기는 어떤지 같은 정보들은 알기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작곡가 박물관만을 가기 때문에 (절대 비판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굳이 본인이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는 작곡가의 박물관은 다녀오지 않는다) 비교군이 없는 상태에서 리뷰를 남겨 리뷰를 믿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나름대로 여러 곳의 박물관을 다녀와 비교군도 있고, 전공자는 아니지만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진솔한 방문기를 남겨두고 싶었다. 30편 가운데 라이프치히 바흐 박물관이나 멘델스존 박물관,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박물관, 바르샤바 쇼팽 박물관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미 방문해 후기를 남긴 곳들도 있지만 코트 생탕드레 베를리오즈 박물관, 라이프치히 그리그 기념관처럼 한국어로는 거의 정보를 얻을 수 없는 박물관들도 있으니 여긴 어떤 곳인지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갈 사람에게는 여행 참고자료가 되어주고,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달래는 창구가 되어주려는 의도였는데 이 의도가 잘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또 한편으로는 이 글을 통해서 정보만이 아닌 나의 추억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을 사는 일이라고 하는데, 내 글은 여러분들에게 또 다른 삶을 경험하게 해 주었을까. 돈도 체력도 전문지식도 없지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수많은 박물관을 방문한 어느 대학생의 삶을 말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도 벌써 8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작곡가 박물관을 방문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마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많은 박물관을 방문하며 작곡가들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꾸준히 알게 되다 보니, 다시 유럽에 간다면 같은 박물관에 가도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또 29화와 30화에 언급되었던 멘델스존 오타쿠 친구가 나중에 '독일 작곡가 박물관 지도'를 어디서 찾아서 보여주었는데, 하인리히 쉬츠, 카를 마리아 폰 베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내가 전혀 만나지 못한 작곡가 박물관부터 바덴바덴의 브람스 하우스, 본의 슈만하우스처럼 여러 개의 박물관 가운데 몇 개를 놓친 박물관들도 있었다.
내가 쓴 글들을 돌아보니 어떤 박물관에 '가지 못한 것' 말고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초반부에 쓴 글들을 보면 '아니 할 말이 이것밖에 없었니!'라고 스스로를 책망하고 싶어진다. 각각의 도시에 박물관들과 함께 방문하면 좋은 장소들도 정말 많은데 이것도 일부밖에 소개하지 못했다. 베를린의 멘델스존 박물관 (이 박물관은 펠릭스 멘델스존만이 아니라, 모세 멘델스존부터 아브라함 멘델스존, 파니 멘델스존, 그리고 그 후세대들 모두 그러니 멘델스존 가문의 역사를 다루는 곳이다)이나 파리의 Cite de la Musique, 파리의 비스트로 '르 카르디날', 라이프치히의 카페 바움, 빈의 레오폴트 뮤지엄과 같이 방문할 만한 작곡가 관련 명소는 끝이 없다. 하지만 어찌 첫술에 배부르겠는가. 미숙한 대학생이 이만큼을 어찌어찌 써냈고 30편의 글을 다 써 브런치북을 '완결했다'는 것에 지금은 만족하고 싶다. 이 글이 연재되는 7개월간 내 글이 모든 독자분들께 작은 즐거움이 되어 주었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내 글에 대한 모든 종류의 관심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른 곳의 작곡가 박물관을 다시 한번 호명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독한 연구자들이 발굴해 낸 정보가 눈에 띄는 라이프치히 바흐 박물관,
여러 작곡가들을 몰아넣어 다양한 맛이 있는 함부르크 브람스 박물관,
거친 물살 가운데를 위풍당당하게 가르는 프라하 스메타나 박물관,
따뜻한 사람을 위해 일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가득한 프라하 드보르작 박물관,
무상한 세월과 시간을 포근하게 품어 주는 빈 하이든 박물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 빈 모차르트 박물관,
한때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이제는 조용해진 빈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박물관,
삶과 생명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의 안식처였던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박물관,
쓸쓸함과 고독이 감도는 빈 슈베르트 박물관 (들),
그와는 정반대로 우리에게 놀이공원의 시끌벅적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하우스 오브 슈트라우스,
어두운 역사와 위대한 정신을 동시에 담은 빈 베토벤 파스콸레티 하우스,
한 걸음 한 걸음이 보물창고나 다름없는 본 베토벤 박물관,
어린아이의 기쁨과 슬픔을 담은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생가,
소소한 일상과 후세대의 신격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잘츠부르크 댄싱 마스터 하우스,
부부의 잔잔한 슬픔과 사랑 그 뒤 남겨진 그리움이 배어 있는 뒤셀도르프 슈만 박물관,
산골짜기에 꼭꼭 숨겨놓은 오팔처럼 다채로운 코트 생탕드레 베를리오즈 박물관,
명예가 비추는 광휘, 그리고 그 뒤편의 그림자를 경고하는 바이로이트 바그너 박물관,
아버지가 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던 예술가의 회한이 스며든 바이로이트 리스트 박물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관통하는 아이제나흐 바흐 박물관,
세기를 뛰어넘어 두 천재를 조우할 수 있어 골라먹는 맛이 있는 런던 헨델 헨드릭스 박물관,
우아한 겉모습과 달리 소소한 귀여움이 숨겨진 바르샤바 쇼팽 박물관,
한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을 담은 공간을 만들어버린 젤라졸라 볼라 쇼팽 박물관,
그늘 속 가려져 있던 인물을 햇빛 아래로 데리고 나오는 라이프치히 슈만 박물관,
위대한 교육자를 향해 아낌없이 헌신하는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
작곡가 그 너머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라이프치히 그리그 기념관,
도시 이야기와 시대문화적 배경, 작곡가와 악기까지 한 자리에 모아놓은 만능 할레잘레 헨델 박물관,
이상을 향해 날갯짓한 이카루스를 추억하는 츠비카우 슈만 박물관,
과거의 한 단면을 그대로 잘라서 박제해 놓은 바이마르 리스트 박물관,
그리고 작곡가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봐 주며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는 라이프치히 멘델스존 박물관.
이 모든 곳을 글을 통해 여러분들과 다시 한번 방문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2025. 03. 05 (수)
채굴꾼 올림
추신: 독일의 모든 작곡가 박물관 목록이 궁금하시다면 이 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