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by 김한글

감기로 아프고 피곤하여 12시에 잠들었다.

사실 더 일찍 졸렸지만 이래저래 미루다가 그래도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잤다.

푹자고 8시에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췄으나 정확히 7시에 눈이 떠졌다. 나가야 할 시간보다 많이 일찍 일어나서 재미로 유튜브를 잠시 시청하다가 엄마가 끓여놓으신 건강차를 따숩게 마시고 왠지 조금의 으슬함이 느껴져서 따순 물로 샤워를 했다.

9시반경에 후배와 만나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먹기로 하여 준비하고 나왔다. 새하얗게 눈이 온 길을 기분좋게 걸었다. 후배가 감기기운으로 일찍 나오지 못한다 하여 나혼자 사람이 별로 없는 널찍한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 먹었다. 맛이 좋고 가게가 넓어 내가 좋아하는 곳이지만 평소엔 사람이 많아 그런 여유를 못느끼는데, 이른 아침이라 내가 좋아하는 조건들이 다 갖춰졌다.

오늘 아침은 행복하였다.


나에게 ‘행복’이라하면 떠오르는 두개의 순간이 있다.

독일 유학시절중이던 어느 날, 내가 살던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의 스타벅스에 앉아 따뜻한 녹차를 한잔 시켰다.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층고가 높은 실내, 적절한 사람의 밀도, 적절한 사람들의 오가는 소리, 간간이 들려오는 기차 안내방송의 울림, 그리고 천천히 녹차 한모금을 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감사함과 기분좋음. 대단한 조건은 하나도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순간이 나에게 행복의 대명사같이 뇌리에 남아있다. 이유는 전혀 모르겠다. 그러한 조건들이 내가 좋아하는 조건들인가?


또 한 순간역시 독일에서였는데, 그날은 새벽부터 오디션을 보기위해 기차를 타고 슈투트가르트에서 뮌헨으로 향하던 날이었다. 전날 왠지 잠을 못자서 컨디션이 너무 안좋고 피곤하였다. 고속열차인 ICE를 타지 못하고 Regional Bahn (지역기차)을 타고 천천히 향하였다. 해가 뜨지도 않은 채 출발하였는데 중간 어디쯤인지 해가 떠오르고 있는 순간이었고, 내 귀에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4악장의 결연한 부분과 일출의 화려한 빛이 어우러지며 나는 행복의 절정을 음악의 클라이막스와 함께 맞이하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순간 피어나는 큰 감사와 행복.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나 앞으로도 행복할수 있을것 같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과 음악을 들을수 있는 귀와 내 귀에 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음악기계장치만 있으면 되는것이었다.


행복을 위해 수많은 조건을 거는 요즘 세상.

그러나 생각보다 행복, 별거 아니다.


다시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어리석게도 조건없는 행복에 대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요 몇년간은 연애를 하고싶다는 것에 대하여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추며 살았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도 연애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조급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다. 뒤늦게 정체성을 확립하고 남자를 찾기위해 나섰으나, 너무 어렵다.


남자를 찾는 남자로써,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문화와 무언의 룰같은 것에 나는 잘 적응하지 못한 듯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살고싶지가 않다. 그것은 연애 불발의 원인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들에게도 나는 소수자인 것이다.

내가 꽤 오래전에 했던 그 생각이 얼추 맞는 것 같다.

소수자중의 소수자.


이것의 원인중에는 나는 내키지 않는것을 생각없이 따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대중적인 것에 관심이 적으며, 사회적인 소외감을 느낄때가 많았다.

이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길로 이어졌다.


지금은 여러가지로 어느정도는 안정을 찾은 듯 하나,

여전히 나는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나로써 제대로 살고싶은 나의 인생의 목적, 나 자신에게로의 집중. 명상. 고요함.


내가 본능적으로 원해왔던 모든것은 행복을 줄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결코 행복만 가져오는것이 아니라 좋지 못한 것을까지도 반드시 종합적으로 오리라. 그러기에 나의 바람은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것일테지. 이루어 지지도 않지만.


반대로 모든것이 바람대로 되지는 않아온 삶이나 나는 이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다. 그래야 한다. 그렇게 배웠다. 즉, 내 소망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로구나. 그러나 나의 어리석음도 사랑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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