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삶

by 김한글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란 관리하는 것인가, 그냥 놓아두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때때로 꽤 있었다. 관계에 대한 고민은 초등학교 시절부터도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고등학생쯤 되니 심화되어 이쪽 무리에서 저쪽 무리로의 무리한 이동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그들 무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듯하여 반항의 차원에서 자발적 외톨이가 되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내가 친하고 편하던 무리에게로 되돌아오기도 하였다.


30대 후반의 성인이 된 지금은 정답은 없으나 관계란 놓아둠도, 철저한 컨트롤도 아닌 그 중간의 어디쯤. 혹은 그 중간을 왔다 갔다 가변적으로, 혹은 유동적으로 나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


그 애매함의 태도는 모든 면에서 필요한 것이며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중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는 지능적인 밀당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런 것을 못함으로.


어릴 때는 죽어라 하고 하지 못하는 내가 어른들의 꾸지람처럼 미웠고 한심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한 삶의 기술이 오히려 매우 현명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 차원의 외교도 그러하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고 하는 것처럼 뱀의 교활함을 가져야 한다고. (뱀리둥절..•ㅅ•?)


어릴 때부터 인기가 많은 친구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러한 인기를 취하고 싶었던 걸까?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볼 법 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 내가 잘못 살고 있나?‘라는 비약까지 이어지게 되는 듯도 하였다.


모임은 즐거우나 공감 없는 순간이 길어질 때 나는 소위 얼굴은 웃어도 ’ 현타‘가 온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얼른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생각.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 날 알아줘!‘ 한다고 알아주나? 그냥 지혜롭게 그런 순간에는 그 자리를 피하면 된다.


이러나저러나 사람은 만나야 한다. 그러나 무게중심은 나에게 두어야 하며 그런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나 자신을 온전히 지키고 나에게 맞는 주변인들을 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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