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한계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를 읽고서

by 아론
자아 성찰은 강요나 억지가 아닌, 내 삶의 새로운 한 부분이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와 어록들, 그리고 필사했으면 좋을 만한 문장들로 가득한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출발해 제목으로 끝을 맺는다.


머리를 깨부수는 망치 같은 어록들.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답 없는 질문들에 답을, 모두의 정답보다는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도록 해준다.


말하고자 하는 길은 하나로 통한다. '언어의 한계를 깨는 것은 성찰이요, 그 결실은 글이다' 내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다.


예전에 적었던 글과 지금의 글을 비교하면 어휘의 변화와 다양성의 범위가 다르다. 지금의 글들도 훗날 단점이 훤히 보일 정도의 글이겠지만, 일단 적어야 한다. 그래야 비교와 성장이 가능해지지.


치열하게 천천히, 자주 멈추고, 깊이 사색하며 읽어라.

나의 글에는 쉼표가 많다. 입으로 글을 읽었을 때, 잠시 쉬어가면 더 음미할 수 있는 문장이 되게 하기 위함인데 비트겐슈타인도 본인의 책에 쉼표를 많이 넣었다고 한다.


그의 의도는 운율보다는, 곱씹어서 읽었으면 하는 배려가 담겨있다. 이 책의 필자는 1권의 책을 1년간 반복해서 읽는다고 한다.


삶이라는 원고지를 1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본인만의 방식으로 적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겠지.


상대에게 도착해야 말이라 부를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문장만이 아닌 본인의 견해와 다양한 사레들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악플러, 아니면 주변 사람들 중 아프게 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들의 한계는 그들의 지혜와 삶에 갇혀있다. 이는 누구나, 더 넓은 한계를 가지고 있을 뿐임을 암시하는 제목과 함께 그들을 이해하되, 지양할 수 있게끔 해준다.


귀에 들어가도 마음에 닿지 않으면 말이 아닌 소음에 불과하다. 필요한지 아닌지와 고려와 배려라는 포장을 하지 않은 선물은 고물상에서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피상적인 대화를 할 바엔 차라리 멋지게 충돌하는 게 낫다. 다치는 게 두려운 사람은 영원히 정직하게 생각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각자의 우주가 충돌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천체들이 서로 공전하며 돌기도 하지만, 충돌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다만, 충돌하려면 제대로 충돌하는 게 좋겠지. 실제 우주에서는 탄생 이유를 알기 어렵지만,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감으로써 각자 삶의 이유를 찾고 나아가야 할 테니까.


마찰력이 없으면 우리는 걷지도, 뛰지도 못한다. 발바닥과 바닥 간의 마찰 덕분에 방향성을 갖고 나아간다. 그 마찰력을 삶의 단계에 맞추어 활용한다면, 더 멀리 날아갈 추진력도 얻을 수 있다.


즐기기만 하는 건, 감정이 없는 기계의 일이다. 하지만 기록하는 순간, 그 페이지에 감정이 꽃처럼 피어난다.

기록에 대한 글들이 나를 때린다.' 적어야 한다. 남겨야 한다. 기록해야 한다. 틀리든 맞든 상관없다. 일단 적고 남기고 나누어라.' 필자는 그렇게 주장하는 듯 의견을 피력한다.


육지에서 배를 옮기려면 모래밭에서 밀어내야 한다. 직접 해야 한다면 무척 많은 힘이 들겠지. 다른 예시로, 네모난 바퀴를 굴린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터덜터덜 돌아가며 에너지를 많이 사용할 것이다.


점점 가속이 붙고, 닿는 부분들이 마모되어 둥글어진다. 종국에는 큰 힘이 들지 않더라도 정속 주행이 가능하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나에게도 꼭 필요한 말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필자만큼 1년간 반복해서 이 책만 읽지는 못하겠지만, 비트겐슈타인을 좀 더 실생활과 밀접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글을 적지 못한 날들을 반성하고 매일 포스팅을 이어가는 글쟁이가 되어야겠다. 글밥이 싸이면 글근육도 생기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