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제 모든 게 마지막

논산 훈련소 훈련일지 - 020

by 아론

수료 1일 전이다. 다들 기상시간 전 침구 정리는 기본이다. 끝남을 아쉬워하거나, 기대하는 목소리가 반반이다. 아침 점호 후 139번 훈련병이 다리 부상에도 불구하고 뜀뛰기를 완수해서 자랑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행군 이후 주요 훈련이 다 마무리되어 지구병원에 가기로 했다. 담당 분대장은 P 분대장으로, 군인의 모습에 심취한듯하지만 개구쟁이 같은 모습도 섞인 분대장이었다. 훈련병들의 호불호도 강한 편이었다.


아침 식사로 비엔나소시지 볶음, 연근조림, 배추김치, 쌀밥, 소고기 미역국, 우유가 나왔다. 메뉴는 아침식사로 훌륭했지만 인원이 적어 분대장님과 거의 독대하다시피 한 식사자리가 다소 불편해 배가 아팠다. '침묵은 금'이라는 생각으로 필요한 답변만 간결하게 했다. 마치 상견례자리 같은 식사를 마치고 출발했다.


발이 불편한 훈련병을 선두로, 천천히 걸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졸업하기 전에 학교와 이별하는 기분이 들었다. 더는 만나지 못할, 한 점에서 만나 각자의 방향을 향해가는 직선과 같이 천천히 걸었다.




무척 만족스러운 진료였다. 걱정했던 검사 결과는 근 시일 내에 회복될 정도였고, 군의관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셔서 더 자세하게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아마 현역병이면 부대 배치 이후 병원 진료가 어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는지 약도 꼼꼼하게 살펴 처방전을 내어주셨다. 진료를 마치고 기다리는 동안 함께 내원한 155번 훈련병과 자잘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순박한 시골청년같이 항상 웃는 얼굴에, 친절함을 가진 훈련병이었다. 요리사를 준비한다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복귀해서 책을 좀 읽다가 롤링페이퍼를 돌렸다. 다들 빼곡히 적어주어 나도 모든 인원들에게 명절날 할머니께서 떠주신 밥처럼 듬뿍 따뜻한 말들을 입과 마음으로 골라 적어주었다. 모두들 각자의 개성을 적절히 덜어내고 큰 다툼 없이 잘 끝내 다행이었다.


점심으로 춘권, 닭볶음, 로제 분모자, 김치, 쌀밥, 유부장국, 비타민 음료가 나왔다. 훈련소를 나가면 무엇을 할 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복귀했고 마지막 행사인 수료식 예행연습을 위해 전투복을 착용하고 입영심사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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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기간 동안 눈에 아른거렸던 입영심사대를 다시 보니, 초등학교에 돌아온 것처럼 이전과 달리 작아진 공간으로 느껴졌다. 키 순서로 줄을 섰는데, 내 머리에 대고 기침하는 인원과 징징대는 다른 생활관 훈련병들과 무리 지어 있으니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왔다.


단체 행사의 특성상 재미없고 오래 걸리는 데다가 한 자리에 계속 서있어야 해서 발바닥이 아팠다. 부대에 복귀해서 총기 반납을 하는데, 행정보급관님이 총기 반납 장소로 가는 순서가 다르다고 모든 인원을 다시 움직이게 해 시간이 2배로 걸렸다. 본인이 순서를 조금 조정하면 될 텐데, 무의미한 시간이 또 흘렀다.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자몽 선키스트 음료, 쌀밥, 부대찌개, 생선가스, 배추김치, 그리고 특식으로 핫도그 1개가 나왔다. 편차가 심한 이 식사도 마지막이다. 내일 아침에는 행사를 진행하고 곧바로 집에 간다.


매트리스도 걷고 휴대폰에 설치했던 각종 보안 어플도 삭제하고 반납해야 할 물품들을 수거했다. 다음 기수가 올 준비를 이전 기수가 해두고 가는 식이다. 안내하는 P 분대장도 평소와 달리 엄청 들뜬 목소리로 안내해 주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우리 생활관은 물건 운반을 위해 잠시 분대장님들의 생활공간 층으로 이동했는데 다소 충격을 받았다. 고라니처럼 뛰어다니는 병장 교관들이 많았고 고함을 지르거나 소리치는 병장들도 많았다. 우리 교육을 담당하는 분대장들은 대부분 상병 이하였다. 그들도 연공서열에 따라 업무량이 달라지는구나, 여기도 다 똑같구나, 싶었다.


마지막 밤, 취침 전 담당 분대장들이 각 생활관으로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생활관이 가장 잘했다는 상투적인 칭찬과 폐급 훈련병에 대한 이야기, 분대장님들의 실제 나이와 당시에는 떨리고 당황스러웠지만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오늘만큼은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코골이들도 그리울... 아니 이건 절대 안 그리울 거다. 정말 시끄럽다. 아쉬움에도 정도와 선이 있지. 싫은 건 싫은 거고 좋은 건 좋은 거고.


이렇게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밤도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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