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 훈련일지 - 2
훈련소에서의 2일 차, 오늘도 어김없이 눈은 떠졌다.
오전 7시, 기상나팔 소리에 일어나 생활복과 장갑을 끼고 나왔다. 도수체조와 아침점호, 간단한 제식 훈련이 이어졌다.
아침식사 후 1시간 정도 병영생활에 대한 예절교육이 생활관 내 TV로 진행되었다. 자리가 TV 바로 밑이라 잘 보이지 않아 목이 아팠다.
오전 11시, 전투복을 받았다. 드디어 첫 군복. 조금 군인 냄새가 났지만 아직 중학교 수련회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수료식 일정이 1시간 당겨질 수 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확실하지 않으면 끝까지 꼭 챙겨보아야 한다.
불침번을 선 다음 날은 피곤하다. 교육장에서 진행된 정신교육시간은 너무 졸렸다. 이후 분대장, 소, 중대장 훈련병 지원에 대한 방송이 나왔다. 군대에선 나서지 않는 게 제일 좋고, 만약 나서고 싶다면 최선을 다하는 편이 좋다.
다 지나고서 알게 된 부분이지만, 실제로 각종 대표 훈련병들은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다. 인센티브라는 제도가 있어 추후 설명하겠지만 사회복무요원으로 3주만 지내면 사회로 돌아가는 우리에겐 크게 인센티브처럼 느껴지기 어렵다.
오후 2시, 점심은 중식 하이라이스와 탕수육, 계란국과 단무지, 김치에 델몬트 망고주스가 나왔다. 희한하게 군대 밥이 맛있게 느껴진다. 3주가 생각보다 잘 흘러갈 듯한 기대감이 옷깃에 스며들었다.
오후 3시, 파상풍과 수막구균 예방주사를 맞으러 이동했다. 기접종인원은 맞을 필요가 없지만 어리광 부리듯 주사 맞기 싫다는 이유로 안 맞는 친구들도 더러 보였다. 뭐, 본인 의사를 존중하는 게 맞지.
예방접종을 위해 이동하는 거리는 대략 1.5km로 왕복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걷기 좋았다. 매일 운동했던 나로서는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느끼던 차라 좋았는데, 평소에 운동과 멀었던 친구들은 투덜대기 시작했다.
접종 맞는 시간은 인당 30초 이내, 양쪽 어깨에 2명의 군의관이 동시에 접종하고 다음 사람이 앉는 식이라 무척 빠르게 지나가지만 인원이 많은 만큼, 대기시간이 길다. 메모장에 끄적이며 시간을 보냈지만, 작은 책 하나 정도 들고 가면 좋겠다.
앉아서 대기하는 동안에는 꾸벅꾸벅 졸았다. 먹고 앉아있고 걷고를 반복하면 하루가 간다. 이러다 위아래로든, 좌우로든 키가 클 것 같다.
덩치가 큰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대부분 착하고 함께 하는 동안 땀을 많이 흘리는 것과 코골이가 심한 특이사항 외에는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너무 덩치가 커서 도보가 어려울 정도인 훈련병은 훈련소 내에서 다시 5급 판정을 받아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면 굳이 훈련소에 와야 하여서 교육받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아픈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곳이지만 병역판정에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지내는 동안 꽤 많았다.
다만 마음이 아픈 친구들은 좀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따가운 시선과 말들을 피할 수 있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본인이 아니면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 도움은 받겠지만 오롯이 본인의 몫을 잘 해낼지는 미지수니까.
그리고, 훈련소에 들어오고 더 겸손해지는 시간이 많았다. 이 또한 추후 설명할 이야기들에 포함되겠지만 간단한 실수의 예시로 같은 발 같은 손이 나가거나, 관물대 정리가 어수룩하다거나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회에서 어딜 가도 기본 이상은 해왔지만,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서는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절대로 타인을 함부로 놀리거나 비웃지 말고 자신의 행동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건물들이 높지 않고 약간의 산만 있어 뻥 뚫린 경치가 참 좋다. 다만 어딜 가나 다른 훈련병들과 함께해야 하기에 사유하기에 좋은 공간은 아니다.
오후 5시, 총기를 받았다. 제법 무겁지만 끈을 매다니 제법 들만하다. 7kg 정도라고 하는데 손목 관절이 안 좋은 사람은 제대로 들고 다니려면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할 듯하다.
이후 소대장 훈련병을 뽑았다. 우리 소대장 훈련병은 같은 생활관의 133번 훈련병이 되었고 사회에서는 프로 축구선수였고 훤칠하니 해병대 조교 같은 인상의 친구였다. 처음엔 주먹 쓰다 온 사람인가 싶었지만 차차 대화를 나누다 보니 참 순하고 예의 바른 친구임을 알게 되었다.
아마 어떤 대표 훈련병이라도 손을 든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대장분들도 나서서 하려는 친구들을 선호하고 사회에서의 음식을 먹는다든지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회사에서는 항상 먼저 손들고 나서서 했었지만, 이곳에서는 잠자코 있어보려 한다.
귀찮은 잡무가 많아 자주 불려 가는 반면 받게 되는 명예나 위상, 포상은 적은 편이다.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얼굴 익히기엔 좋으며, 사회에서 리딩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추천하지만 이미 해본 적이 많다면 다른 친구들에게 양보하는 것도 미덕이라고 생각되었다.
오후 7시, 저녁 먹기 전 거수경례를 배웠다. 모자를 쓸 때는 모자 끝에, 안경을 썼다면 안경테 끝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면 눈썹 끝에 맞춰야 한다. 이것저것 배우는 게 참 많은데 외운다기보단 체득한다는 느낌으로 익히는 게 좋다.
저녁은 유부 김칫국, 김구이, 돈사태찜, 김치, 그리고 쌀밥이 나왔다. 적당히 맛있었다.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짬타이거라고 불리는 고양이를 쓰다듬다 조교에게 걸렸는데 관리하지 않는 고양이라 만지지 않는 게 좋다고 한소리 들었다. 얼른 다시 손 씻고 복귀했다. 이제는 사회에서 하기 힘든, 이런 경험도 나쁘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생활관에 복귀하고 총기와 전투조끼 등을 조정하면서 조금씩 대화도 나누고 서로 도와주며 정리했다. 아직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데, 조만간 이 가면도 벗겨지지 않을까 싶다. 내일은 토요일이다. 주말에는 1시간씩 휴대폰 사용이 가능하기에 연락할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들어오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사실 3주라는 시간이 사회에서는 꽤 빠르게 지나가기에 정작 걱정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임을 망각하고 타인에 얽매이며 지냈구나 싶었다. 그래도 이때 아니면 언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또 해보겠는가.
괜히 훈련소 들어왔다고 연락하는 게 속 보이는 행동처럼 보이지 않을까도 싶었다. 이것도 역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히 사회와 단절된 공간에 들어오니 그럴 법도 한 생각이었다. 바보 같지만, 그럴 수 있는 생각.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다. 2일이 지난 시점이지만 많이 배우기도 하고 들어오고 첫 주차에 가장 바쁘다고 했기에 정신없이 흘러간 이틀이었다. 오늘 자면 18번만 자면 집에 갈 수 있다. 20박 21일짜리 수련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