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일차

논산훈련소 훈련일지 - 3

by 아론

오래 서고, 앉는다. 한 자세를 유지하기에 썩 좋은 침대와 신발이 아니기에 허리와 목이 아프다. 과도한 운동으로 피로에 절은 몸에 휴식을 취하기 좋지만, 어딘가 부족한 듯 불편한 이곳은 훈련소다.




오전 9시, 아침을 먹고 연대구호를 배운다. 맨손 제식 중 차려, 열중쉬어, 쉬어, 부대 혹은 동작 그만, 거수경례, 무릎 앉아, 편히 앉아 등을 배웠다. 3일 차가 돼서야 상관에 대한 경례를 하게 되었다.


아침은 모닝빵, 식빵, 시리얼, 우유, 쨈과 버터가 나왔다. 군대리아라고 하는 메뉴는 자대배치를 받는 현역병들만 맛볼 수 있는지 훈련소에서는 빵과 시리얼로만 이루어진 메뉴가 나온다.


소문에 따르면 훈련소 입소 후 3일 정도는 변비에 걸린다고 한다. 메뉴가 부실하거나 긴장에 의해서라고 하는데 우유가 나오자 일제히 거의 모든 훈련병들이 화장실로 향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오전 11시, 제식 훈련 간 토하는 훈련병을 봤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훈련을 받기에 표정을 몰랐으나 아마 잔뜩 찡그린 표정이었으리라.


손을 우측 상단으로 들다가 마스크를 벗고 바닥에 토하기 시작했다. 다치거나 아픈 곳이 있어서 보충역으로 왔지만, 역시 아픈 사람이 많구나 싶었다.


해당 훈련병을 체력이 약하거나 한 게 아닌 금연을 며칠간 이어가다 니코틴 패치를 붙이면서 구토를 했다고 한다. 훈련소에서는 니코틴 패치나 사탕을 하루에 1개 정도 지급한다.


금연을 이어가다 갑작스레 니코틴이 몸에 들어오면 역한 느낌을 받아 구토를 하게 된다고 한다. 흡연자의 경우 참고하면 좋겠다.


이제 조금씩 서로 친해지면서 칭얼대는 이들이 많아진다. 사회생활을 하다 오면 어느 정도의 구속은 그러려니 하게 된다. 다소 야박하게 말하는 상급자도 그러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도 그러고 싶지 않았으리라 하는 그런 정도의 이해를.




주기적으로 들리는 군가와 훈련 소리가 조금은 훈련소에 왔음을 실감 나게 한다.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밖에서는 그렇게 빨리 흐르던 시간이었는데.


서른이 되어가는 시점에 조금씩 늙어감과 시간의 흐름이 살갗에 느껴졌다. 그 통증 아닌 통증이 줄어든 건 좋은 일이려나.


정오, 점심시간이다. 이러다 소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먹고 잘 쉬고 있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또 식사 시간. 생각보다 음식도 잘 맞고 알레르기가 있으면 대체식까지 준비해 준다.


단체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 시간이 더 좋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척 필요하게 느껴진다.




오후 2시, 오후에는 잠시 대열 정비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오와 열은 가로와 세로를 의미하고 좁고 넓게 모일 때 요령 등을 간단히 배웠다. 날씨가 좋아 훈련받기도 좋았다.


'벌써' 3일 차라고 느껴질 만큼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이 떠다니는 풍경은 집에서도, 이곳에서도 황홀하게 느껴진다. 나만 그런가?


조금씩 주변 사람들과 말을 트고 있고 든든하게 물건을 챙겨 온 덕분에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 군인권 관련 캐리어나 배낭에 들고 온 물건은 일일이 검사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마스크팩이나 커피, 차와 같은 작은 즐길거리를 들고 오는 것도 좋다.




오후 2시 반, 넓은 주차장에서 잠시 앉아 쉬는 동안 다른 훈련병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조금씩 긴장이 풀려 서로 편해지는 시기인 듯하다.


쉬는 동안 P 분대장님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FM 느낌의 P 분대장님은 사회에서 한문학과를 나와 천주교 군종병을 하고 있었다. 신기한 이력에 이런저런 질문들이 오갔고 제식의 뜻도 배웠다.


절제할 제, 동작 식. 동작을 절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제식이며 군대에서 모든 행동을 제식에 맞춰해야 하지만, 분대장인 본인도 모든 생활에 있어 하기 어려울 정도로 쉽지 않다는 점을 공감한다는 인간적인 대화를 해주어 조금 놀랐다.


또한, 수많은 병사를 소수의 지휘관이 통솔하고 대열을 유지할 때는 특정한 규칙이 필요하기에 준수해야 함을 인지시켜주었고 그 필요성에 대해 설득하듯이 안내해 주어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오후 6시 저녁을 먹고 샤워장에 다녀왔다. 오늘은 막사 안에 있는 샤워시설을 이용했는데 화장실에 세면대를 치우고 샤워기를 달아놓은 느낌이다. 옷이 젖기 쉬우니 빨래바구니가 있으면 좋다.


식사를 다녀오고 연병장을 생활관 인원들과 1바퀴 돌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힘듦을 나누었다. 분대장, 소대장 훈련병이 같이 있다 보니 지금 생활에 대한 공감과 함께 조금씩 의지를 늘리고 있다.


소박한 대화지만 그 어떤 즐길거리도 없는 환경에서, 함께하는 시간만큼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건 없다. 바보 같은 행동도 해보고 서로 조금씩 벽이 허물어지며, 나도 훈련소에 들어와 처음으로 웃는 시간을 보냈다.




오후 6시 반, 주말에는 앞서 설명했듯이 1시간씩 휴대폰을 사용하도록 한다. 다들 바짝 긴장도 했고 처음 해보는 불침번에 지쳐있었지만 휴대폰을 받는다고 하니 활력이 돌았다.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고마움을 십분 느끼는 시간이었다. 가족들, 친구들과 통화하며 훌쩍 지나가는 시간이 살갗을 스치듯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정말 빠르지만 웃고 떠들다 보니 다들 어느 정도 기운이 난 듯하다.


원래 통화를 자주 하던 친구와는 통화 내내 이 상황을 농담거리 삼아 계속 웃었고 마음이 있던 친구에게는 넌지시 연락도 해보고, 도란도란 나누는 메시지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후 8시 반, 처음으로 세탁실 사용 허가와 춘추활동복 착용가능 허가가 났다. 내 생활관 자리는 뜨거운 라디에이터 옆에 있었는데 자는 동안 동계활동복을 입고 자기엔 너무 더웠다. 이불로 막고 잘 정도라 대책을 마련해 봐야겠다.


불침번 순번이 나와있는 경계작전 서약서를 확인해 보니 첫 번째 주말까지는 모든 인원이 불침번을 서게 된다. 다음 불침번은 5시 30분부터 7시까지였는데, 생활관 인원 중 1명이 퇴소조치가 되며 4시부터 5시 반까지로 변경되어 아쉬웠다.


종종 생활관 인원 중 퇴소조치 되는 경우가 있다. 훈련소 생활이 불가한 수준의 거구를 가졌거나 전과가 있는 경우, 혹은 이와 다른 사유로 생활이 불가하다고 지휘관이 판단되는 경우 퇴소처리가 된다.


물론, 훈련소 생활을 하지 않고 귀가하는 건 부러울 수 있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일반적인 상황에서 퇴소 조치가 되지 않기에 이미 아픈 상태로 훈련소에 온 사회복무요원 훈련병들은 그리 부럽게만 느끼지 않아도 되겠다.




오후 10시까지 청소와 점호 준비를 마쳤다. 안 하려고 하는 사람 없이 서로 도와주고 나서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생활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착하고 성실하다.


지나가다 중대장님과 마주쳐 인사를 나누다, 머리에 대해 지적을 하셨다. 들어오기 전, 어차피 들어가서 다시 자르겠거니 하고 집에서 직접 머리를 밀었던 탓에 커다란 밤송이처럼 되어 지저분한 상태였다.


다행히도 헤어 디자이너를 하다 들어온 훈련병들이 있어 부탁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자르든 훈련소에 있는 동안의 머리이니 이런저런 고민 없이 맡기기로 했다.




오후 10시 이후에는 자기 전 대부분 훈련병들이 휴대폰 사용한 후 흥분에 휩싸여 서로 대화의 장이 열렸다. 아쉽게도 당직 분대장님에게 걸려 혼났지만, 마치 수련회 온 것처럼 들뜨고 웃겼다.


공동생활을 하며 서로의 관심사가 모이고, 조금씩 생활관 인원들과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생활도 이렇게 편하고 즐겁게 흘러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