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훈련소 훈련일지 - 012
어제의 예고대로 아침부터 일찍 지구병원 방문을 위해 움직였다. 다른 훈련 연대와 겹치면 진료가 안되어 다음 일정에 지장을 주기에 오늘도 많은 배려 덕분에 일찍 움직였다.
하지만 아침 식사 후 바로 내원한 병원에서의 느낌은 '불편함'이었다. 몸이 편해지려 방문한 병원에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감수해야 하는 걸까?
아픈 부위와 질환을 말하니, 의사도 아닌 데스크 직원이 마음대로 진료 과목을 변경하고 이후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일처리가 되어 다소 당황스러웠다.
'얼굴 붉히기 싫으니 그냥 받을까' 싶었지만 기왕 방문한 병원에서 제대로 진료를 받고 싶었다. 다시 접수처에 가서 재접수를 요청했고, 다행히도 마찰 없이 접수되었다.
총기 휴대로 손목이 자주 꺾여 심해진 손목 염증으로 침을 맞았고, 허리와 목에 디스크 질환 관련 통증은 상급병원 진료를 권유받았다.
국군대전병원에 가면 CT나 MRI 촬영까지 가능하지만 지구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야 하는 부분을 몰라 훈련 기간 내에 대전병원까지 방문하지는 못했다.
이외에도 통증이 있던 부위의 X-RAY 촬영을 통해 이상이 없고 단순 염증 정도라는 진단을 받았다. 종합병원에서 종합적으로 진찰을 받았다는 만족스러움이 처음의 불편한 느낌을 상쇄시켜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고 2시간 정도 쉬었다. 중간에 차출도 있었지만 가위바위보에 이겨 운 좋게 좀 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폰이 없는 12평 남짓한 생활관에서 14명 정도의 남성이 있는 공간은 썩 독서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래도 진료 잘 받고 왔음에 만족!
이후 체력측정이 이어졌다. 이번이 마지막 체력측정인데, 2분에 팔 굽혀 펴기 72개, 윗몸일으키기 66개, 3km 뜀걸음에 13분 정도가 나왔다.
이번 측정에서는 특급전사가 못되겠지만, 그럼에도 상위권의 성적에 이 또한 만족!
그러다 일과시간이 마무리된 후 샤워장에 모이는 시점에 사건이 발생했다. 자꾸만 늦는 139번 훈련병이 모두가 기다리는 상황에서도 미적미적 걸어오는 행동을 보임에 모두가 화가 단단히 났다.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험한 말을 할 뻔했지만, 애써 꾹꾹 눌러 담고 생활관으로 복귀 한 뒤 모두와, 특히 자주 늦는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조심하도록 기강을 잡는 시간을 가졌다.
딱 필요한 정도만. 우리만 있는 자리에서 필요한 말에 감정을 섞지 않고 말했다. 다들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하려 하는데 더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필수적인 수준까지는 하자고.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 속 잠깐의 긴장을 풀기 위해 140번 훈련병의 주도로 마피아 게임이 이루어졌다. 호텔관광학과를 전공하고 있고 레크리에이션에 해박한 140번 덕분에 시간은 훌쩍 취침시간까지 흘러갔다.
잠들기 전에는 136, 139, 140번 훈련병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누구나 말하고 싶은 상황은 많지만 듣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이 부분이 내가 이들에게 채워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연장자로서 역할이라 생각했다.
모두들 본인의 삶을 항해하는 선장이자 항해사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곰곰이 이야기를 듣고 최선의 조언만 아주 잠시 해주었는데, 마음에 닿는 말들이었기를.
이렇게 12일 차도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