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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Jun 30. 2020

시차

내 새벽은 원래 일몰이 지나고 하늘이 까매진 후에야 해가 뜨네

내가 처량하다고 다 그래 "야 야, 난 쟤들이 돈 주고 가는 파리의 시간을 사는 중"이라 전해


카페에서 '시차'가 흘러나온다. 주변에서 우원재가 음유시인이라며 호들갑을 떨기에 일부러 듣지 않았지만, 오늘은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으므로 여유를 빌려 차근차근 들어본다. 근데... 이 노래가 이런 노래였나. 들을수록 가늘게 뜬 DOK2눈이 풀리고, 노래가 끝날 때쯤엔 이미 매료되어 가사를 더듬어간다. 세 남자가 위아 위아 하며 노래하는 바뀌어버린 낮과 밤. 내게도 있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이들처럼 치열하지도 멋있지도 않았지만, 날밤을 새고 일찌감치 등교해 차가운 책상에 엎드려 자던 열여섯과 열일곱 무렵이.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여섯 시, 약속시간까지 1시간, 유튜브의 '시차' 1시간 연속 듣기 영상을 누른다. 울먹이는 듯 비강을 울리는 래핑이 반복되며 코 끝으로 그때와 같은 새벽 냄새가 짙어진다.



"깜빡깜빡"


깜빡깜빡이 의태어가 아닌 의성어였던 밤이었다. 행여 눈 깜빡이는 소리가 들릴까 뜬 눈으로 버티다가 가르랑 그르렁거리는 부모님의 코골이가 들려오고서야 채비를 했다. 해먹 위에서 몸을 뒤집듯 조심스레 배를 깔고 누워 자세를 잡고, 이어폰을 꽂는다. 배추가 가르쳐준 대로 주파수를 맞추고 시계를 보니 벌써 한 시가 코앞이었다. 금기의 역장 속에서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른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정확히 한 시가 되자 금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본 방송을 청취함으로써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피해, 불면증, 정서불안, 과대망상, 인성 변화, 귀차니즘, 대인기피, 왕따, 식욕감퇴, 발육부진, 성적 하락, 가정불화, 업무능력 저하, 소득감소, 직장생활 부적응 등등에 대하여 본 고스트 스테이션 제작진 일동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음을 경고드립니다"


고스트 스테이션, 문제의 그 라디오 프로그램은 호환마마 어쩌고 하던 옛 비디오테이프의 공익광고 같은 경고문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밝은 세상을 만들자는 다짐 대신 자기 책임은 없다며 너스레를 떨 뿐이었다. 2시간가량의 방송도 같은 톤이었다. DJ라는 작자는 진행이 귀찮거나 기분이 언짢다며 지가 좋아하는 음악을 마구 틀어놓고 도망치곤 했다. 한 번은 '삼태기 메들리'라는 트로트 메들리를 틀어놓고 튀었는데, 새벽 한 시에 30분짜리 트로트 메들리를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 난장판에는 코너도 규칙도 없었고, 금기도 절제도 없었다. 어째선지 그 무책임함이 좋았다. 나도 무책임한 일탈로 화답해야만 했다.


그 날부터 나는 밤새 라디오를 듣고, 학교에 와서는 배추와 나란히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반에서 가장 키가 큰 멀대 둘이 창가 자리에서 자는 모습은 가을볕에 말려놓은 들깨대처럼 축 늘어져있었다. 겉보기에는 얼핏 평화로웠지만, 그곳이 교실이었다는 점에서 지극히 반사회적이었다. (주범은 배추 쪽이었고, 나는 그를 따라 듣기 시작한 모방범에 불과했다.) 배추와 친해진 것은 전적으로 내 못된 버릇 때문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짐작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 버릇은 누군가 그 예상에서 벗어날 때 급관심을 가지는 버릇과 한 벌을 이루었다. 배추는 알수록 의외 투성이었다. 싸움을 엄청 잘하게 생겼지만 잘하지 못했고, 잘하지 못했지만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굳건한 소신과 남다른 취향이 있었지만 설득하거나 자랑하려 들지 않았고, 물어오는 친구들에게는 기꺼이 알려주었다. (배추의 CD플레이어에는 보아와 카멜롯, 팻 매스니와 김동률이 함께 있었다. 중3이었는데!) 몸이 커서 동작도 컸지만 아무에게나 막 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무시당하지도 않았다. 걘 그러니까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받고 흔들리던 그때의 아이들 사이에서 단단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배추가 데미안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당당한 모습의 그 애를 보면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고, 걔가 하는 건 다 그럴싸해 보였다. 그래서 따라 듣기 시작한 게 고스트 스테이션이었다.


그곳은 신세계였다. 야심한 새벽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싶었지만 오산이었다. 평일에도 다음 날 출근 걱정, 수업 걱정을 제쳐놓고 우리와 같은 일탈을 하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들은 서로를 '고스식구'라고 불렀다. 고스식구는 초등학생부터 어느 회사의 중역을 지내는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사회에서 만나면 쉽게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이 새벽과 반말을 매개로 뭉뚱그려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단지 같은 라디오를 듣고, 같은 감성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말을 놓고, 자기 이야기들을 꺼냈다. 그러다가도 친구나 가족이라든지, 이성문제라든지, 혹은 돈이라든지 하는 세대를 관통할 수 있는 주제들이 나오면 나이와 경험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로 나뉘었다. 마치 겉으로 보기에는 한 덩어리지만, 빵칼로 잘라보면 단층이 드러나는 티라미수처럼. 나는 스푼을 쥐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죽 긁어내며 그것들이 어우러진 맛을 볼 수 있었다. 한 스푼 한 스푼 떠먹을 때마다 교과서에는 없고 선생님은 해주지 않는 말들이 전파를 타고 밤을 건너왔다.


"정서적으로 해로운 친구는 끊어낼 수도 있어야 한다."

"가족이 가장 폭력적일 수 있다."

"어른들은 생각보다 철들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전복되는 순간이 좋았다. 그 순간에는 사람이든 인생이든 뭔가 좀 더 깨우치는 느낌이 들었다.(물론 착각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집에서 가족끼리 치킨을 시켜먹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언제나처럼 닭날개를 집어 들며 "닭날개는 먹으면 바람피우니까 애들이 먹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데 그 날 따라 의문이었다. 저게 바람을 피우겠다는 범죄 예고인가. 어머니랑 하나씩 나눠먹으면 사이좋게 맞바람을 피겠다는 소린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그게 아니었기에 "그러면 아버지가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라고 했다가 어디 말대답을 하냐며 손쉽게 제압당했다. 앞뒤 없이 따지느라 닭목 하나도 건지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좁은 세상의 가장자리들이 전복되며 오델로 판에 흑백의 돌을 채워나가듯 내 세상도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옳고 그름, 좋고 나쁨으로 나뉘었던 이분법의 경계도 흐릿해졌다. 키가 크려면 자야 했을 시간이었지만, 밍밍한 속을 채우려면 밤을 새워야 했다.


나는 배추보다 더 열렬히 라디오에 빠져들었다. 마왕은 가끔 서로를 확인시키려는 건지 "지금 듣고 있는 사람들은 불을 잠깐 켰다 끄라"라고 했는데, 부모님에게 얹혀살며 몰래 라디오를 듣는 우리 형편에선 따라 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몰래 밤샘을 하는 놈들이 뭘 불 한 번 켰다 끄는 걸로 그러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잔뜩 쌓인 돌탑 위에 작은 돌을 하나 더 올리는 아슬아슬함이었다. 몽땅 무너져버릴까 봐 조심스러웠다. 여하튼 둘 다 망설이던 중에 이번엔 의외로 내 쪽에서 저질렀다. 서로 작당모의만 하길 수차례였던 어떤 날 나는 마왕의 신호를 듣고서는 큰 맘먹고 드르륵거리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때마침 저편에서 불빛이 깜빡거렸다. 그게 꼭 고스식구였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다들 잠든 밤에 신호를 주고받는 비밀결사의 일원이 된 것만 같았다. 다음 지령에는 나도 깜빡였다. 봉화대에 불을 피운 듯 사명을 완수한 충만함을 안고 도로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그날은 날개 달린 온기가 잠시 반짝였던 창문들을 타고 새벽하늘을 뛰어다니는 꿈을 꾸었다. 자랑하는 건 어쩐지 멋이 없어서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배추에게도 자랑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보다 그 친구에게 소개받은 친구와 더 친해져 버리는 뻘쭘한 상황 같았다. 셋이 함께 얘기할 수 없는 둘만의 비밀 같은 것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열일곱이 되었다. 배추와 나는 다른 고등학교로 배정받았다.


서로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배추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걔가 1년 사이에 얼마나 더 대단해져 있을지 잔뜩 기대를 했다. 우리는 근처 공원에서 만나 맛도 모르면서 맥주를 마셨다. 캔맥주를 부딪히며 음악도시와 올댓 뮤직도 듣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내 나름의 취향이 생겼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다. 이소라가 어쩌고 토이가 어쩌고 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배추가 더 이상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고 했다. 배추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수학 점수가 잘 나와서 이과를 선택했다고 했다. 수학 점수가 잘 나와서라니... 그렇게 멋없고 맥 빠지는 소릴 할 줄은 몰랐기에 버럭 하며 따져 물었다.


"방송작가 하고 싶다면서? 왜 이과를 가냐?"

"너는 철없는 소리 좀 하지 마라"


배추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걔도 께름칙했을 결정을 자꾸 따져 물으니 화가 났을 법도 했겠지만, 그런 걸 알지 못했던 그때에는 그 문장이 명백한 비문이었다. '데미안이 발끈했다'라니... 그런 주어와 그런 술어는 양립할 수 없었다. 발끈한 건 확실했으므로 눈 앞의 이 친구가 더 이상 데미안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결론 밖에는 없었다.


"고등학교에 가더니 조금 변한 것 같다"

"니가 변했어"


"너도 변했다" 정도만 됐어도 그만큼 적막이 흐를 일은 아니었을 텐데. 우리말은 조사가 참 중요하다. 긴 침묵에 우리는 무얼 삼키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꿀꺽거리기만 했다. 이게 그 날 대화의 전부다. 2년 만에 만났지만 소회 같은 건 얼마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후로 배추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위 아 위 아 위 아

Don't you know we are


세 남자가 한 시간의 고된 반복 공연을 마치고 검은 화면, 스마트폰 속에도 밤이 찾아왔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1시간 다 들었으면 2시간 연속 듣기도 한 번 해볼래?" 하며 추천해주기에 식겁하며 어플을 껐다. 고개를 현실로 돌려 카페를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기에 단톡방을 확인해보니 한창 호들갑들을 떨고 있었다.


"야 오늘은 스타 한 판 조지자"

"콜, 2차 내기임"

"얼른 오기나 해. 홀수니까 젤 늦는 사람 빼고 할 거임"

"곧 도착"


30분 전부터 곧 도착한다는 친구들은 오랜만에 외출 재가를 받고 신이 나서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조잘댄다. 집에서 말 안 듣는 첫째 아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기특한 친구들. 저들을 보니 배추를 나이 좀 들어서 만났다면 어땠으려나 싶다. 그랬다면 좀 제대로 걜 볼 수 있었을까? 부풀려 보지도 혼자 실망하지도 않았을 수 있었을까? 오랜만에 사연을 보내 그 친구에게 우연히 소식이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졌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고스트 스테이션이 없으므로 그것도 여의치 않다. 다만, 배추도 없고, 고스트 스테이션도 없고, 그 새벽의 시간들도 없는 저녁 7시 사람들의 한가운데에서 그 앨 생각하며 스마트폰에 몇 자의 메모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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