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시도

내 글의 재료는 나

by 무쌍
내 글의 재료는 나
내 인생의 시도는 갑상선에 냉장 보관된 글쓰기였다.



다시 책을 펼쳤다. 글을 쓰고 싶지만 글이 써지지 않을 땐 가장 좋은 방법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다 알 수도 없지만 먼저 살다 간 작가들이 남겨둔 책은 나에게 선생님이 된다.

두껍지만 (1,330페이지가 넘는다.) 좋아하는 책이 있다. 바로 몽테뉴의 수상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필 즉, 에세이라고 불리게 된 건 프랑스의 미셸 몽테뉴 때문이다. 그가 쓴 책 제목이기도 한 수상록은 Les essais라고 붙여졌고, 시험, 시도해 본다는 뜻이었던 에세(essai)에서 비롯되었다. 그럼 몽테뉴는 무엇을 시도해 본 것일까? 몽테뉴 성의 서재에서 인생의 진실한 성찰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치 자신의 수련과정을 글로 옮긴 것처럼 하나하나 구체적인 것들이었다.

그의 책 <수상록>을 읽는 독자들에게 남긴 말을 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된다.

나 자신이 바로 내 책의 재료다.

어마어마한 책 두께에 놀랐지만 읽다 보면 정말 술술 넘어간다. 여러 번역본에 있지만 갖고 있는 책이 가장 안타까운 번역인 듯싶다. 틈이 나는 대로 다른 번역본을 빌려서 좋아하는 부분을 비교해 보면 글맛이 전혀 달랐다. 그렇다고 직접 원서로 스스로 번역해 보겠다는 시도는 절대^^ 하지 못한다. 번역을 할 재주도 없을뿐더러 번역가의 노고를 충분히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른 번역본을 비교해서 읽는 건 좋은 공부였다.


갖고 있는 책은 '인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똑같은 결과에 도달한다.'에서 시작해서 '경험에 대하여'까지 총 107개의 작은 소제목으로 엮여 있다. 읽다 보면 혼잣말인 듯 시크하게 정리해 버리는 스타일에 반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성실함을 인정하게 된다. 책은 그가 말한 대로 '터놓고 보여 줄 수 있는 한도'에서 시도했다는 그의 선택에 매료된다.

요즘은 글을 쓰는 마음이 어디론가 숨어버린 듯싶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갑자기 뭘 쓰려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까? 잠시 멍해졌다. 그래서 다시 몽테뉴의 글이 필요했다. 그가 남긴 글들 속에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 듦에 대하여'엔 아주 많은 밑줄을 그었다.

나는 내 속에서 굴러다닌다. 내 속에 있는 진실이 무엇이건, 이 진실을 추려 내는 능력과 내 신념을 쉽 자리 굽히지 않는 이 자유의사를 나는 주로 내게서 얻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그리고 완전히 내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 연습을 좀 늦게 시작했다. 서른이 되었고 직장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해 목표가 생겼지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바로 '갑상선기능저하증'이란 병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1년간 휴직을 해도 몸이 나아지지 않으니 결국 사표를 내야 했다.


대학시절 교수님이 해주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20대를 지내다가 보면, 서른 정도에 만나게 되는 3가지 장애물이 있다고 하셨다.
첫 번째 돈, 그리고 건강, 마지막으로 결혼이라고 말이다.
3가지가 다 순리대로 풀리기도 하지만 그중에 하나가 잠깐 발목을 잡을 테니 조심하면서 지내라고 하셨다. 그걸 잘 넘기면 배우는 것이 있을 거란 말도 하셨다. 그때는 웃고 넘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알 것 같았다.

건강이 회복되길 기다리다가 흘러가는 시간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몸이 좋아지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기운 없음'이란 갑상선기능저하증의 증상은 사라졌지만 '무기력함'은 이미 머릿속까지 전이되어 버렸다.

갑상선 염증 뒤에 숨어서, 자신감이 없는 나를 숨겨 온 걸 인정해야 했다. 갑상선 염증과 함께 살다 보니 나의 삶도 진지해지는 듯싶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억지로 만들지 않고 꽃처럼 피어나는 있는 그대로 말이다.


어쩌지 못하는 갑상선 염증처럼, 있는 그대로 나와도 잘 지내야겠다. 매일 먹는 갑상선 호르몬제가 성가실 때도 있지만 덕분에 나는 더 잘 지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좀 부족하면 어떤가. 딱 맞게 처방된 약은 얻을 수 없었지만 경험은 나를 글 쓰게 한다. 몸이 더 나빠질까 봐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 조차하지 말아야 한다고 몸을 사린 것은 아닐까? 예전에 써놓은 글을 읽다가 몸이 무너진 것을 핑계로 시간을 허비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갑상선 때문에 냉장되었던 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시도해 봐야겠다.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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