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에 생긴 죄책감
글을 쓰기 위해 포기한 것
갑상선 염증처럼 나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 갑상선에 생긴 죄책감이다.
글을 쓸수록 살아있는 나를 확인하게 된다. 나를 알아가는 것이 곧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아프지만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고, 살아있는 작가가 된다면 더 나빠질 것 같지 않았다. 글이라는 언어를 빌려와 새로운 서사가 만들어지면 아픈 갑상선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나에게 어느 날 병이 찾아왔다. 그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 안경을 쓴 듯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초라해 보이는 것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문틈 뒤에 숨어 있는 머리카락이나 먼지, 화분 아래 말라 떨어진 나뭇잎이나 꽃잎, 어쩌면 수명이 다해서 이제 사라지는 시간들에 대해서 나도 모르는 경건한 마음이 나를 다른 나로 살게 했다. 글은 거짓으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몸 상태를 위해 6개월 동안 입원하지 않아도 항상 환자복을 입은 생활을 했지만 차도는 없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약을 먹어야 비로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갑상선 저하증 환자. 글을 쓰면서 소심한 갑상선에게 말을 건넨다.
직장을 잡고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모든 것이 내가 의도한 대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해 같은 날짜에 아버지는 하늘고 가셨다.
내가 집을 떠난 날짜와 아버지 기일이 같다.
집을 나온 나도 아버지가 가신 지도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 오랫동안 떠나지 않은 죄책감은 마흔이 넘어서야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자주 주저했던 이유가 '죄책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갑상선이 주저앉힌 건 내 몸이었지만 마음도 병이 생겼던 것이다. 갑상선에 생긴 염증처럼 마음에도 염증이 생겨버렸나 보다. 하지만 글은 매일 쓰고 싶었다.
잊어버리고 싶은데, 자꾸만 떠올랐다. 죄책감은 가끔씩 공포스러운 얼굴로 나타났다. 그림자 속에 숨은 어둠은 잠시 사라졌다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글을 항상 그 죄책감에서 도망가고 싶은 나를 주저 않게 했었다.
그래서 나는 죄책감을 포기했다. 글을 쓰기 위해였다.
어둠 속에 있었으니 빛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방향은 찾았는데 겁이 나서 빠르게 걸을 수가 없었다. 죄책감은 그림자였다. 밝게 빛나는 날에도 그 빛 때문에 그림자가 생겼다.
등잔 밑이 어두운 건 등잔불이 만든 그림자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데 보지 못한다고 하는 뜻으로도 설명되지만, 그림자에 가려진 것이었다. 무언가 찾으려고 할 때마다 등잔의 그림자처럼 죄책감이 따라다녀 나를 볼 수 없었다.
죄책감을 일기를 쓰듯 적어놓고 감춰두었다. 노트를 펼치면 또 그림자가 보였다. 써놓은 글들을 꺼내고 싶은데 망설여졌다. 반짝이는 보석들만 쓰고 싶은데 노트에 여기저기 쓰인 죄책감이 자꾸 멈추게 했다.
내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라며 겁을 주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갑상선 염증처럼 나를 괴롭히는것이 있다. 갑상선에 생긴 죄책감이다.
들판에 야생화가 누가 꼭 보러 올 거라고 예약을 받아 피는 것이 아니듯 나무들도 꼼짝 않고 자란 곳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린다.
이맘때 겨울산은 아버지와 같이 갔던 한라산을 생각나게 한다. 산에 사는 나무들은 생김새가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고 하셨다. 곧게 자라지 않고, 이리저리 휘어져서 자란 가지를 보며 감탄하셨다. 비탈진 길에 사는 나무와 계곡에 사는 나무, 주어진 환경에 맞게 스스로 자란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한라산에서 내게 구상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 나무라고 알려주신 것도 아버지였다. 같이 봤던 구상나무의 가지런한 이파리도 나무 향기도 생생하다. 지난번에 왔을 때 보다 고사한 구상나무가 더 많아진 것 같다며 오랫동안 말없이 바라보셨던 모습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얼마 전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니 고사해서 죽은 나무가 너무 많아져 산언덕이 으스스해 보였다.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약병을 꺼내 호르몬제를 먹는다.
나보다 더 오래 약을 드신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여전히 약병을 보면 그림자처럼 나타난다. 갑상선에 생긴 염증처럼 마음에 스며든 죄책감이었다. 아버지에게 해드리지 못한 죄책감 대신에 그림자 친구가 생겼다. 꽃을 좋아하던 아버지를 흉내 내고 싶었는지 꽃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꽃밭은 나의 은신처가 되었고, 태양이 비치는 꽃 뒤로 생기는 그림자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갑상선에 생긴 염증도 내 그림자처럼 익숙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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