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바람처럼 계속 나타난다

멈추지 않는 걱정들

by 무쌍
걱정은 바람처럼 계속 나타난다.
멈추지 않는 걱정들은 바람으로 불어와 내 갑상선까지 차갑게 만드는 것 같다.



갑상선기능저하증상이라서 겨울을 견디기 더욱 힘들었다. 갑상선이 망가지면서 추위를 더 잘 타게 되었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동안 내 인생을 걱정한 대가로 돈으로 받을 수 있다면, 난 벼락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걱정하는 것은 습관처럼 떠나지 않는다. 정이 들지 않은 순간을 알아채면 내가 뭘 걱정할 게 있는데 뭐였지 하며 찾기도 한다. 내 사주팔자가 걱정 없이 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산책을 나섰는데 태양이 벌써 멀어진다. 아직 남은 꽃을 찾아야 하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야 한다. 하루 일과를 다 해낼 때까지 언제나 태양이 내편이라면 좋겠다. 겨울은 너무도 가혹하게 몸을 꽁꽁 얼어 버리게 한다. 상선이 나빠지면서 추위를 잘 타게 되었다. 건강할 때는 더위를 못 참았었는데 이젠 추위를 참을 수가 없다. 찬바람을 너무 쐬면 이틀은 꼬박 누워있어야 한다. 그러니 겨울 산책은 태양이 보드랍게 비추는 낮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


가을 낙엽이 다 지고 담쟁이 열매 사진을 찍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도통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미루다 보니 예정일 보다 늦게 찾았다. 산책로는 새로 공사를 하느라 보도블록이 쌓여있고, 장미묘목들이 새로 심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재방벽을 따라 담쟁이 열매는 남아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잎도 열매도 없는 담쟁이 덩굴 2020.12.11

작년엔 담쟁이 열매가 포도송이만큼 많이 달렸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겨우내 새들이 찾아왔을 텐데 이상하리 만큼 한 방울도 찾지 못했다. 가을에 왔더라면 붉게 물든 잎이라도 보았을 텐데 말이다. 기대했던 풍경은 보지 못하고 뒤돌아섰는데, 작고 붉은 알갱이들이 보였다. 작년에는 줄기가 하나였던 배풍 등이 제법 많은 가지를 만들었다. 담쟁이 열매를 못 봐서 아쉽지만 붉고 귀여운 열매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야생의 식물들은 강하지만 연약하기도 하다. 너무 작기 때문이다. 작은 틈에 뿌리를 박은 덩굴은 풍성하지 않지만 뿌리가 지탱할 만큼 줄기는 만들어진다. 달랑거리는 빨간 열매를 계속 보고 있으니, 집으로 데려와서 창문에 걸었으면 할 정도로 탐이 났다. 추운 날씨를 견뎌야 했지만 그 풍경을 또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갑상선이 피곤하면 산책도 나갈 수 없지만, 혹한 겨울이 열매들을 남겨두지 않을 듯싶었다.


바람이 불어서 빨간 배풍등열매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배풍등 열매

바람이 불어서 빨간 배풍등열매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휘 부는 바람은 솟구치고 덩굴줄기는 휘돌아 제자리에 돌아왔다. 아주 잠깐이지만 바람이 멈출 때가 있다.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으면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순간이 만날 수 있다.


배풍등 열매 앞에서 원하는 사진을 찍는 방법은 바람이 멈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빨간 열매를 선명하게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흔들린 사진은 초점이 맞지 않아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사진작가라면 바람도 작품으로 찍는다. 실제로 제주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김영갑 작가는 제주도의 바람을 신비롭게 사진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그의 사진에는 바람이 있다. 제주는 섬이기 때문에 바람은 여기저기서 하루 종일 분다. 바람이 없는 날이 없을 정도니까 말이다. 게다가 예측할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뀐다. 그의 작품 속 중산간의 억새 사진은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억새가 주인공이 아니라 억새바람을 넣은 듯 보인다. 그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에서 그는 바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글, 사진 김영갑)


"심술 사나운 돌풍이 짓궂게 장난을 걸어오면 억새는 더욱 신명 나게 춤을 춘다. 힘센 바람이 제아무리 못살게 굴어도 처음 모습 그대로이다. 아름드리나무들도 얼마 버티지 못해 뿌리째 뽑히고 크고 작은 나무들도 바람이 떠미는 방향으로 누워 있건만 억새는 끄덕도 않는다. "


그는 심술 굿은 바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바람을 품에 안고 사시사철 함께 중산간 초원을 떠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나는 억새의 변화에 따라 기분도 변한다. 내 감정은 고여 있지 않고 주변 분위기에 따라 흐른다.'라고 했다.

나도 가만히 선채 찬바람을 맞고 있으니, 김영갑 작가가 바람에 춤을 추는 억새를 보며 어떤 기분으로 촬영을 했는지 더 묻고 싶었다. 바람이 불면 오히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힘을 주고 몸을 단단히 한다. 억새들은 바람에 흔들리긴 하지만 꺾기지 않는다.

나도 억새처럼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갑상선이 추위를 더 타게 하지만 몸을 따뜻이 할 요령을 찾았다. 걱정이 바람처럼 달려들지만 감정이 흔들릴 뿐이다.


배풍등 열매가 흔들리는 사진을 찍기엔 나는 초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선명한 사진을 찍지도 못한다. 내가 본 배풍등 열매의 영롱한 빛을 담기는 여렵다. 그래도 바람이 멈추자 붉은 열매를 몇 장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니 방금 산책을 나설 때 하던 걱정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걱정들을 다시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원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한참을 기다리는 것처럼, 원하는 마음이 될 때까지 걱정을 분석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걱정을 떠올리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걱정은 바람처럼 지나가도 곧 다시 불어온다. 그 바람을 미워할 것인지, 흔들리고 있는 저 배풍등처럼 지나가게 둘 것인지 선택하면 되었다. 또 걱정 바람이 불어오겠지만 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산책을 나서며 털모자와 장갑을 끼고 겹겹이 입은 옷 덕분에 이었을까? 바람을 한참 맞고 서 있었는데도 겨울 산책에서 돌아온 갑상선은 별일 없는 듯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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