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아요

우선순위

by 무쌍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차가워지고 느려진 몸은
소화 불량과 변비가
고질병처럼 따라다녔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다른 증상들은 좋아졌지만 소화불량은 시간이 걸렸다.

점점 음식 섭취량도 줄어들었다. 먹는 음식이 소화되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맛이 없고, 많이 먹지 않아도 뱃속엔 뭔가 늘 남아 더부룩했다.

하루에 한 번 먹는 갑상선 호르몬만 나를 안심하게 하던 때였다.


그런데 소화불량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위가 더부룩하고 쿡쿡 쑤시는 증상은 가끔씩 나를 불편하게 한다. 꼼짝 못 하고 속이 편안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건강상 위에 이상이 있지도 않은데,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건 바로 갑상선 기능저하증 때문이었다.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일단 몸에 들어간 음식물을 소화하는 과정이 문제기 때문이다. 내가 겪고 있는 갑상선 기능저하증은 가장 먼저 '갑상선 호르몬'분비를 방해한다.

갑상선 기능은 자율신경계도 영향을 받아 몸의 대사를 느리고 둔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난로가 고장 난 겨울처럼 냉기가 흐른다는 뜻이다. 춥고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누워있는 동안 세상이 멈춘 듯 시간이 느껴지지 않았다.




녹초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 오늘도 집안일만 하다가 몸을 혹사시킨 건 아닌지 말이다. 정해진 시간에 지치지 않고 보내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다."
이 간단한 말은 한꺼번에 많은 일들을 해내야 하는 엄마로서 아주 유용하다. 과도하게 예민해지 않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주문이다. 내 예민한 성격은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강박증과도 연결된다. 주어진 일을 모두 다 처리해야 비로소 내 차례가 되는 미련함도 포함된다. 정작 가족들을 챙기다 보면 나는 뒷전이 되기 때문이 이다.


여전히 밤마다 엄마를 찾는 아이들 틈에서 이사 온 집 정리를 하는 중이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머릿속은 유령처럼 떠도는 말들과 해결되지 않은 상황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문득 걱정하는 일이 하기 싫었다. 떠올려 봤자 당장 해결되지 않고 두통만 부르는 것들을 곱씹는 대신에 봄꽃 구경을 나섰다. 하기 싫은 일을 두고 나와서 인지 온갖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수유꽃과 매화꽃이 피고 나니 개나리꽃도 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피었던 홍매화는 꽃잎이 옅어지며 지고 있다. 목련은 꽃봉오리가 통통해졌고 조팝나무는 작은 잎이 돋아난다. 봄을 시작한 꽃 사진을 찍으려면 오전 시간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꽃은 언제 찍어도 좋지만, 동틀 무렵이나 오전 해가 있을 때를 좋아한다. 이미 핀 꽃을 보기보다는 꽃봉오리를 찾아내 서서히 피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마치 집 정원에 키우는 나무와 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이나, 꽃을 보는 시간이 많은 엄마가 되고 싶다.


특별하지 않지만, 작고 특별하지 않는 이야기를 쓴다. 쓸 것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다 보니 쓸 말이 써진다. 어마어마한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로 했다. 하기 싫은 설거지를 미뤄두고 오전에 찍어놓은 꽃 사진을 열어 보았다. 꽃을 보니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진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설거지가 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올괴불나무꽃@songyiflower 인스타그램

몸이 좋아졌다고 과신할 수 없는 건 소화불량이란 신호다. 무시할 수 없다.

하루 만에 좋아지기도 하지만 오래 지속되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몸이 좋지 않기도 한다.

소화기관이 문제가 아니라서 갑상선 염증 관리만 잘 되면 문제는 없다. 호르몬제를 잘 챙겨 먹고, 주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잊어버릴 만한 소소하고 즐거운 일을 해야 한다.



어제 나간 산책에서 처음 보는 꽃을 봤다. 금방 꽃나무 이름을 찾지 못하다가 '올 괴불나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른 봄에 피는 꽃 중에 하나였는데, 땅 위에 작은 야생화만 쫓아다니다가 보지 못했나 보다. 꽃잎 색은 진하지도 않았고, 이파리도 나지 않은 마른 가지에 대롱대롱 피어났다.

또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친구는 이파리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나처럼 꽃을 참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 다짐해 본다.

'하고 싶은 일을 아껴두지 말아야지,
꽃을 봤으니 이제 슬슬 귀찮은 일을 하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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