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살지는 않아요

고독의 시간

by 무쌍
채혈검사는 언제나 날 긴장시킨다.

갑상선 염증도 피를 뽑아서 하는 검사 말고, 혈압계나 체중계처럼 기계가 안전하고 안 아프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혼자 병원에 다녀오는 길은 늘 외로움이 함께 따라다닌다. 종종 남편이 같이 가주기도 하지만 오늘은 나 혼자다.


어떤 과거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날을 후회하고, 불쾌했던 기분을 반복하며 생각하고 있으니 더 떠날 생각이 없나 보다. 과거는 이미 버려졌는데도 기억을 되살려 내며 다시 떠올리기 때문이다.

어느 영상에서 보았다.

투명한 컵엔 맑은 물이 들어 있었다. 잠시 뒤 숟가락으로 흙을 퍼서 컵 안에 넣으며 "이 흙은 당신에게 생긴 부정적인 과거나 트라우마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이 컵은 당신의 마음이에요. "


컵 안은 삽시간에 더러운 물이 되었다. 흙처럼 생긴 부정적인 기억들이 내 안에 들어왔으니, 없애고 싶을 거라고 했다. 물속에 섞인 흙을 숟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꺼내보았지만 흙은 사라지지 않았다. 꺼내느라 내 힘만 쏟을 뿐 깨끗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큰 주전자에 담긴 깨끗한 물을 컵에 부었다. 컵은 물이 넘쳤고, 점점 안에 있던 찌꺼기들이 넘치는 물들 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신기하게도 없애는 방법이 아닌 깨끗한 물을 계속 채우는 것으로 정화시켰다. 깨끗한 물처럼 좋은 것에 집중하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었다.



언제나 나는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갑상선호르몬제를 먹는다. 약통에서 꺼낸 작은 약일을 놓쳐버렸는데 어디로 굴러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새로 꺼내 먹을까 하다가,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걸레질을 한 부엌 바닥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작은 약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떨어진 약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약은 내 발 바로 앞에 있었다. 그걸 모르고 이리저리 한참을 보고 있었다니.


약은 늘 내 편인데도 매일 챙겨 먹을 때마다 그만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픈 건 과거처럼 지난 일인데도 말이다. 호르몬제를 먹는 동안 나는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긴다.

어쩌면 매일 먹는 갑상선호르몬제와 함께 마시는 물 한 잔이 나를 정화시켜 주는지도 모르겠다.

흔들리는 마음에 맑은 물을 채우듯 약을 먹기로 마음먹는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남들이 부러웠다. 언제나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이 잡힐 듯 안 잡히는 게 답답했다. 집 안방에 걸린 결혼식 액자를 보 남들처럼 살고 있는 듯 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늘 '모범과 희생'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셨다.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 가족을 위해서 양보나 희생하는 걸을 원하셨다. 갖고 싶은 물건을 양보하는 일이나 먹고 싶은 음식을 안 먹고 마는 일은 별일 아니었지만, 점점 내가 동생들에게 손위형제가 아닌 작은 아빠나 작은 엄마의 역할을 하는 건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보이지 않은 '모범'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았던 것 같다. 의젓해져야 하는 일을 충실하게 하고 싶었다. 학교를 다닐 때까지는 별문제 없는 무난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고 사회적인 역할이 생기니 다른 것들이 신경 쓰였다.


높은 연봉을 받는 자식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갖고 싶다고 하는 물건은 가능한 사드리려고 했다. 백화점에서 산 물건은 더 좋아하셨다. 그럼 자식으로 인정을 받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잘 나가는' 딸은 아니었다. 간판이 좋은 유명 대기업도 아니고 장기근속이 보장되는 공무원도 아닌 사회생활이었다. 월급이 나오면 월세부터 내야 했다.

어느 집 딸이 부모와 유럽여행을 다녀왔다더라, 명품 백이나 고급 화장품을 사 온 딸 이야기도 들어야 했다. 물론 착하고 효도하는 자식들이 부모님께 용돈을 두둑이 드리고, 통 크게 해 드리는 것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자식도 아니었다.

갑상선 치료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예전처럼 효도할 돈을 벌 수 없었지만, 해마다 돌아오는 행사에 맞춰 선물을 보내드릴 수는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통 큰 부모를 둔 사람들을 만났다.

희한하게도 아파트 놀이터에는 부러운 딸과 며느리가 많았다. 엄마에게 아이 돌잔치 때마다 금 열 돈과 현금 백 원을 받았다는 두 아이의 엄마, 명절이면 일하느라 고생한다며 현금 이백만 원씩 용돈을 받는 며느리,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먹이고 놀아 주시는 시부모님을 둔 며느리, 부모님이 경비를 부담하는 가족 여행을 가는 딸, 언제든 전화하면 아이들을 봐주시는 엄마를 둔 딸도 있었다.


부모님이 말하는 다른 집 자식들이나, 내가 만난 부모 덕이 많은 사람들이 '남들처럼'에 남들일까? 물론 아니란 건 알지만, 가끔씩은 부럽기도 하고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책을 실컷 보고, 좋아하는 화초를 계절마다 사고 싶고, 가격표를 보지 않고 가장 좋은 고기를 골라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다. 물론 경제적인 걱정이 없다면 말이다.


눈 쌓인 화단의 장미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남이 인정하는 삶 그것은 정말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삶은 결국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될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책 <고독의 즐거움>에서 "남들처럼 이란 말에 마음을 뺏기지 말라."라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야 그의 말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소로의 말처럼 '하루에 한 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치스러운 고독의 시간'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는 걸 알 것도 같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듯했다. 경제적인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이나 어떤 엄마들과 친한지 더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남들처럼 살지 않지만, 소로처럼 고독의 시간을 자주 갖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시간을 남들처럼 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가장 사치스럽게 쓰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매일 갑상선호르몬제를 먹어야 하지만, 하루에 한 번 브런치에 글을 쓰고, SNS에 내가 찍은 꽃 사진을 올린다. 나는 그 시간을 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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