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호르몬제를 먹는다고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지만, 처음엔 몸이 아프다는 걸 숨기고 싶었다. 곧 건강한 몸이 될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보다가도 집에 있는 침대가 그리웠다. 아무렇지 않게 바깥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지내는 내겐 쉽지 않았다.
한참 전 일이지만 멀쩡히 수다를 떨다가도 눈이 감겼다. 같은 반 아이들이 키즈카페에서 놀기로 했다며, 엄마들의 단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아이는 이번은 꼭 가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모여서 괜찮을 것 같았지만, 두 시간을 훌쩍 보내고 엄마들의 수다가 길어졌다. 아이는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지만, 엄마인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대답만 할 뿐 더 이상 이야기에 끼지 않았다. 너무도 졸렸다.
눈치 빠른 한 엄마가 "xx 엄마는 피곤한가 보네. 커피 더 할래요?"
잠시 망설였지만 말하지 못했다. 학원 시간이 다 된 아이들이 있어서 모임을 정리하게 되었다. 문제는 학원을 간 아이들 말고 나머지 아이들은 헤어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xx 엄마 속이 안 좋아요? 얼굴이 달라졌는데요."
아이를 불러 포켓몬 카드를 사준다고 하고는 겨우 설득했다. 우리가 자리를 뜨자 모임 장소는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분위가 좋아 저녁까지 먹고 들어갔겠다는 약속들을 뒤로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니 살 것 같았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고 7년 차가 되기 전까지는 놀러 가는 것조차 체력이 도와주지 않았다. 반나절 모임도 내겐 버거운 노동 같았다. 그래서 난 갑상선호르몬제를 먹는다고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지나친 외부 활동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제가 또 생겼다.
"언니 몸 괜찮아? xx 엄마 괜찮아요?"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내게 하는 말이었다. 오히려 말하고 나니 더 난감해졌고, 미안해졌다. 그래도 육아를 병행하며 치료를 받아야 하는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고는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가 되기도 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시절 은 몸이 가뿐해지는 날도 있지만 언제나 절반은 지쳐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그렇듯 나도 육아를 해야 했으니 갑상선 탓만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니 엄마들 모임은 사라졌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니 친구를 만들어주는 모임은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말이 없고 나서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나는 내 몸을 아끼는 법을 아픈 갑상선에게 배웠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겨울을 앞둔 가을이면 산책을 하다 놀라운 발견을 하곤 한다. 종종 개나리나 철쭉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만나기 때문이다.
"어머, 철 모르고 꽃이 피었네!"
누구나 익숙한 꽃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알아보고 핀잔을 받기 일쑤다.
"아이고, 이 추위에 무슨 꽃이람?"
야생화는 여전히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있는데도 이른 봄에 꽃을 피웠다고 비슷한 핀잔을 듣는다.
어쩐지 이런 핀잔을 듣는 꽃들이 너무 안타깝다. 타이밍이 그랬을 뿐 꽃들이 피는 건 별일이 아니다. 가을엔 초봄의 날씨와 비슷한 날들이 있다. 그땐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바빠진다. 마치 초봄을 누리듯 남은 꽃들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그 무렵 피는 제비꽃은 정말 그윽하고 짙은 색을 보여준다. 가을은 짧지만 모든 계절 꽃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계절이다.
게다가 이름 봄에도 겨울잠을 잔 야생화들은 한낮 달라진 태양을 먼저 알아보고 꽃을 피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隧處作主 立處皆眞)
불교에서 쓰이는 말로 당나라 고승의 임제 선사가 한 말이며, "있는 곳에서 주인이 돼라. 그러면 어디든 있는 곳이 참된 삶이다."라는 뜻이다.
꽃들이야 말로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누가 보든 안보든 자리 잡은 곳에서 스스로 삶을 산다. 자신의 시간에 맞춰서 꽃을 피우는 것을 탓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뿌리내린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자연은 꽃을 통해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미리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꽃에게 배운 것은 삶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동안 굳어져버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쓰기 시작했고, 쓰고 싶었던 것을 쓰고 있다. 그런데 자꾸 누군가에게 가을에 핀 개나리가 듣던 핀잔을 들을까 봐 겁이 난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글로 쓰이면 밑줄 그어가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 상처가 되어 두고두고 괴로움이 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글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 쓰고 남기는 것은 두고두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때론 생각지도 못한 것들로 인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도 한다.
공간을 바꾸고 나니 삶이 달라졌다. 좋아하는 순서대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그동안 순서를 지키는데 방해하던 것들이 사라졌다. 이사를 했을 뿐인데, 무슨 일인지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다. 마치 발에 걸리던 장애물이 사라져서, 온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언제든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도 불편해지면 장애물이 되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눈치 안 보는 법을 배우며 어렵게 여기까지 왔지만, 걱정을 벗어놓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누굴 도우면서 느끼던 만족감이 오히려 힘들게 하는 줄 몰랐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해주면 좋아하겠지?'떠올리며 에너지를 쏟았다. 그리고 되돌아오는 건 보람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상대에게 의견을 묻느라 한 말인데도, 눈치를 보느라 건넨 말이 되어 버렸다.
다시 수처작주 입처개진을 떠올려 본다. 법륜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 지금 여기 나에게 집중이 되어야지, 내 얘기 안 하고 늘 남 얘기만 하거나, 지금 얘기 안 하고 늘 지나간 얘기 하거나, 여기 얘기 안 하고 늘 저기 얘기하면 인생이 피곤해진다는 겁니다."
함께 즐거워야 한다고 믿었지만 즐거워야 하는 것은 나였다.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나 외에는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다. 항상 즐거움을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처럼 말이다.
산수유나무 꽃이 먼저 핀 줄 알았는데, 홍매화와 매화도 이미 피어 있었다. 영춘화가 피기 시작했고, 곧 목련꽃이 피고 개나리도 필 것이다. 계속해서 릴레이처럼 다른 꽃이 피겠지만, 화단은 꽃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글은 내가 주인공이다.
매화꽃과 영춘화 @songyiflower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