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꽃은 내 맘을 아는 것 같아요

몽고메리의 앤

by 무쌍

매일 무엇을 써야 할지 궁리한다. 그런데 공상과 영감을 오가는 일이라고 믿고 싶지만 늘 딴생각을 한다. 그러다 글로 쓰지 않면 금방 사라질 것만 같다. 오락가락하는 마음으로 글은 건조되지 않은 수건처럼 축축하고 냄새가 났다.

글쓰기는 순간순간 방해하는 것들과 실랑이를 하며 나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같은 시간 같은 행동들로 글쓰기에 도움을 주던 습관들이 자꾸 어긋났다. 봄이 와서 그렇다. 꽃이 없던 겨울부터 서툰 일상을 다듬어 글을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꽃이 없어서 몸이 한가했는데, 봄꽃 구경을 위한 꽃 지도를 만드느라 마음이 온통 꽃밭에 가있다.


나는 대자연을 항상 마음속 깊이 사랑했다. 숲에 울창하게 자란 귀여운 풀고사리, 전나무 아래 핀 초롱꽃의 얇은 이파리, 키 큰 상앗빛 자작나무에 쏟아지는 달빛 둑 위에 서 있는 늙은 낙엽송 위에서 빛나는 초저녁 별, 알곡이 풍성한 밀밭의 일렁이는 물결... 이 모든 것은 '눈물을 흘릴 정도의 사색'과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내 안에 싹트게 해 주었다.
- 내 안의 빨강머리 앤(루시 모드 몽고메리 자서전)

빨간 머리 앤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만큼 자연을 사랑한 작가도 드물다. 그녀의 자서전을 보면 자연 안에서 싹튼 창작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꽃과 나무에 대한 쓴 글들은 빠져들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녀의 자서전을 얼마 전에 읽게 되었다. 한 잡지에 '험한 길'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연재한 것을 묶어낸 책이었다.

" 결국 용기를 내서, 대단치는 않지만 나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내가 한때 성공을 좇아 걸어왔던 고된 길을 말이다. 비록 특별하진 않을지라도, 그 길을 따라 힘겹게 걷고 있을 다른 고행자들에게 조금이나 격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서..'
- 내 안의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서문에는 그녀의 험한 길에 대한 소외가 담겨 있었다. 그녀가 쓴 소설 속에 작지만 용기 있는 빨강머리 앤은 시인이고, 선생님이고 작가로 인생을 살았다. 마치 그녀 자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자서전을 쓴 그녀 나이가 43살이었고 그 후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자서전은 그녀가 작가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안타깝지만 몽고메리에 관한 다른 책에서 그녀의 말년에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자서전을 출판 후 별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출판사와의 법정다툼이 시작된다. 그나마 자서전을 미리 쓸 수 있어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무단 출판하고 허락 없이 저작권을 판 출판사와의 소송으로 남은 생을 힘들게 보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루시 모드 몽고메리와 앤 셜리는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나마 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한동안 글쓰는 것이 망설여졌다. 몽고메리는 글쓰는 자신이 '험난한' 길을 가는 고행자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으로 '힘들고 가파른'길이었다고 강조했다.


개나리꽃길 지도를 만들다 @songyiflower인스타그램

봄 꽃들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개나리다. 화단엔 다듬은 모양대로 꽃이 피고, 중랑천엔 우아하게 늘어진 가지마다 노란색이 된다.

아이를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매번 지켜본다. 입학하고 줄곧 등교하는 아이는 점점 아는 것이 많아지고 친구들도 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씩 자신감을 키우는 아이처럼 학교 담장에 개나리도 노랗게 피어갔다. 늘 그렇듯 교문으로 들어간 아이를 지켜보는데 아이가 바닥에서 뭘 줍더니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뭘 떨어뜨렸나 싶었지만 별일 아니라고 여겼다.


서둘러 동네 산책을 나섰다. 목련이 지기 시작하자 개나리들이 일제히 피어났다. 꽃을 따라서 여기저리 걸었더니 개나리 동산을 여럿 만났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사진을 찍어줄 아이 만한 키의 귀여운 개나리도 찾아 두었다.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고 개나리꽃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기가 귀찮은 듯 아이는 떨어진 개나리 꽃잎을 모으며 신이 났다. 꽃을 줍는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등굣길에 주운 것이 뭔지 궁금해졌다.


" 오늘 교문에서 걸어가다 갑자기 뭐가 떨어졌어?"


" 아니"


"그런데 너 걸어가다 뭐 줍던데?"


"아 맞다. 엄마한테 줄 게 있어"


아이는 가방을 열더니 뭔가를 찾는다. 그리고 내 손위에 올려놓았다. 작고 노란 개나리 꽃잎이었다. 내 손엔 아이가 준 개나리 꽃잎이 있었고, 아이는 계속 떨어진 개나리 꽃잎을 모으고 있었다. 온 사방이 노란색으로 물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글로 쓰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순간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

마치 개나리꽃은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뭔가를 써야 한다는 조바심과 마음 졸이며 꽃구경을 나섰던 나를 안심시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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