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보느라 마트 갈 시간을 다 써버렸다
제비꽃은 모른 척할 수 없어
아이 있는 엄마는 보이지 않는 고무줄을 묶고 산다. 잠시 홀몸이 되었다가 아이가 나타나면 확 당겨져 순식간에 찰싹 붙어 버린다. 동네 꽃구경도 못하고 책도 못 읽고 태어난 둘째가 어서어서 자라서 6개월이 되길 기다렸다.
몸이 수월해지자 밀린 책 읽기를 시작했다. 날마다 두세 권의 책을 여기저기 두고 그냥 읽었다. 그렇게 두어 달을 읽으니 도서관 다독자가 되었다. 다독자로 대출권수가 늘어나자 유모차 짐칸에 책을 싣고 도서관과 집을 오갔다. 바깥구경을 못 가는 설움은 모두 책으로 풀듯 유모차엔 도서관 책이 늘 실려있었다. 꽃 공부를 한다고 한 손으로 들지도 못하는 무거운 식물도감도 유모차에 실어 날랐다.
그러다가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찾았다. 권오덕의 <제비꽃 편지>였다. 꽃을 무척 좋아하는 저자의 이야기였다.
막피어난 금낭화 구경을 가느라 3시간 후에면 젖을 물려야 하는 갓난아이를 시어머니께 맡겨놓고 깜빡한 사연은, 막 6개월 된 아이를 수유중이던 나도 그럴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상상이 되었다. ^^;
법정스님이 발행하시던 <맑고 향기롭게>에서 꽃 이야기로 5년이나 연재를 하셨다니 글에서 그윽한 꽃향기가 나는 듯했다. 글 속으로 꽃구경을 가고 싶을 정도였다. 꽃을 좋아하는 내편이 생긴 듯 든든해졌다.
책 속엔 제비꽃 부케를 들고 결혼한 이야기가 있다.
"내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가던 날 손에 들었던 꽃, 그것은 화려하고 귀한 꽃이 아니라 푸른 보랏빛의 조그만 제비꽃이었다. 향기도 없고 모양이 우아하거나 화사한 것도 아닌데 내가 그 꽃을 따서 부케를 만든 데는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주목을 받지 못해도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기쁨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비꽃 편지> 중, 시집가던 날 손에 든 제비꽃 부케
시골 들녘에 흔하게 핀 꽃을 삶에 중요한 의미로 만들어낸 이야기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이맘때 도심 길가에서 제비꽃을 많이 볼 수 있다. 제비꽃 부케를 만들 정도의 꽃송이가 지천에 피어나고 있다. 날마다 피고 있는 제비꽃을 모른 척할 수 없어 눈도장을 찍느라 눈이 아플 지경이다.
<유쾌한 잡초 캐릭터 도감>이란 일본 잡초 전문가 히데히로의 책이 있다. 잡초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그림으로 설명이 된 흥미로운 도감이다. 가장 먼저 제비꽃이 소개되는데, 제비꽃 캐릭터는 '완전히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여대생'이었다. 여대생이라는 표현은 동의하지 않지만 '완전히 도시생활에 익숙해진'이라는 부문엔 전적으로 이해가 된다.
고향에선 비석이 있는 곳이면 제비꽃이 피었다. 그래서 묘지 꽃으로 알고 있었는데 서울에 살다 보니 도시 꽃으로 민들레만큼 부지런한 꽃이었다. 길가의 콘크리트 틈이나 보도블록 사이 화단 구석이나 놀이터, 주차장, 빌딩 문틈, 공원 벤치 아래에도 피어난다. 종종 의외의 장소에서 제비꽃을 만나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금방 뽀로롱 피어나기 때문이다. 혹시 길가에 노란 민들레가 보인다면, 주변으로 파란 보라색, 연보라색, 드물게 흰 제비꽃도 만날 수 있다. 민들레가 있는 곳이면 제비꽃도 함께 핀다.
흰제비꽃과 민들레, 민들레와 제비꽃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이른 봄 산수유꽃을 보러 고궁을 찾았는데 돌 틈에 피어난 제비꽃을 보고 한눈에 반한 적이 있다. 잔디가 깔린 곳부터 고궁 어디서든 보랏빛의 꽃들이 지키고 있었다. 고궁에 핀 제비꽃은 조선왕조의 비밀들도 기억하고 있는 대단한 후손은 아닐지 궁금해졌다. 바이러스가 물러나고 자유롭게 촬영할 기회가 온다면 고궁의 제비꽃 사진만 찍어 보고 싶다.
제비꽃을 찍고 있는데 어린이집 아이들이 산책을 나왔다. "봄에 제비가 찾아올 때 피는 꽃이 제비꽃이란다."라고 선생님이 알려줬다. 그런데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제비는 어디 있어요?' 선생님은 언른 답을 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아이들은 제잘 거리며 노는데 정신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나도 들은 기억이 있다.
유아 학습지를 권하는 분이 제비꽃 그림카드를 보여주면서 "제비가 올 때 피는 꽃이 제비꽃"이라고 아이에게 꽃 이름을 알려주세요. 다른 꽃 이름도 쉽게 알려줄 수 있다며 학습지를 권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 때문에 동네 꽃이란 꽃은 모두 소개받은 아이에게 그림으로 공부시킬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
사실 제비꽃은 제비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것은 맞다. 그리고 들녘에 완연하게 봄이 왔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이맘때 도심에서 피는 제비꽃은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보게 해 준다. 하나둘 피던 꽃이 금세 잔뜩 피어 꽃다발처럼 보인다. 한 달 내내 부지런히 꽃을 만든다. 꽃이 질 때가 되면 작은 알갱이 씨앗이 생기는데 그땐 개미들에 행진을 볼 수 있다. 씨앗에 붙은 엘라니오솜을 먹느라 개미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제비꽃의 번식을 도와주는 것이 개미들이라니 부지런한 꽃과 짝꿍처럼 어울리는 곤충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꿀벌이 찾아오기 쉽게 꿀을 담은 꽃은 길게 줄기를 세워 기다린다. 제비꽃은 꿀벌에게도 기분을 잘 맞춰주는 짝꿍다운 매력이 있는 듯하다.
제비꽃, 미국제비꽃(종지나물)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그루터기 사이로 제비꽃이 한송이 피었었는데 주변에 번지듯 피어서 제비꽃 밭이 되었다. 보이는 제비꽃을 따라 걸었더니 흰 제비꽃도 만나고 미국제비꽃(종지나물)도 만났다.
키 작은 제비꽃을 보느라 눈이 침침해졌다. 쪼그려 앉아서 사진을 찍다 보니 다리도 저렸다. 그러고 보니 뭔가 빠뜨린 것이 있는 듯 기분이 이상해졌다. 휴대폰에 시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오기 전 한 시간 넘게 여유가 있어서 마트를 가는 길이 었는데, 벌써 하교 시간은 코앞이었다. ^^; 장보기는 아이들을 데리고 갈 작정으로, 학교 정문 근처에 줄지어 핀 제비꽃을 더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