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화단 안에 그루터기들이 눈에 띄었다.그루터기 폭은 한눈에 봐도 1미터가 훌쩍 넘어 보였다. 아이와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 나이테 수를 세다그만 포기했다. 아이는 왜 나무가 잘린 건지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사람들 손에 잘린 것만은 분명했다.
좀 더 걸어가니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 길이 나왔다. 아직 새잎들이 돋아 나지 않았지만 쭉쭉 뻗어 올라간 나무를 지나면서 숲에 온 기분이 느껴졌다. 나무 아래 뒤덮은 이끼는 오랜 시간을 짐작케 했다. 나무는 주변을 지키는 전령처럼 나를 보는 듯했다.
잠시 동안 나무들 틈에서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자연의 모든 날씨들을 견디고 중력과는 반대로 가지를 뻗어내며 힘차게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었다. 바로 뿌리내린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힘이었다. 겨울을 보낸 나무는 앙상한 가지뿐이지만, 곧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초록빛으로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꾸밀 것이다. 어느 날 고개 들었을 때 몰라보게 변신한 나무가 나를 반겨주길 기다린다.
나무아래 이끼들과 그루터기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나무가 있다. 에메랄드그린이란 나무다. 심기만 하면 4-5년 안에 금방 2미터 넘게 자라서 마법의 나무라고 한다. 뉴스에 보도된 영상을 보니 마치 고추 모종을 간격 두기 하고 심어놓은 밭 같이 보였다. 그대로 둔다면 5년 뒤에는 사람이 지나다니지도 못할 빽빽한 숲이 되어 버릴 풍경이었다. 터무니없는 벼락부자를 바라는 사람들이 나무의 힘을 이렇게 사용하기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큰 나무가 되면 뽑아서 보상을 받으려는 걸 심어진 나무들은 알고 있었을까?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작가의 강의를 10년 전쯤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우리나라 곳곳에 귀한 나무들을 만난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들었다.
"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따뜻하고 평화롭습니다. 시골마을을 가보면 어심 없이 마을 어귀에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게 마련이고 그 그늘에는 평상이 놓여있고, 평상에는 마을 사람들이 정답게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요, 느티나무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우리 역사와 삶을 함께 해왔습니다" 고규홍,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나무 <느티나무> 편 中
지금도 뙤약볕에 쏟아지는 날이면,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실내보다 나무 그늘 아래서살랑이는 바람을 떠올린다.
노거수로 남은 나무들은 수려함과 웅장함으로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도시 개발엔 골치 덩이가 되기도 한다.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 영원한 존재가 없는 것처럼 나무도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삶을 마감할 때가 온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살아가며 애쓰는 이유가 나무가 버티고 서있는 이유와 닮아서가 아닐까? 그래서 자연이 보여주는 나무의 힘을 믿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