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왜 피는 걸까? 나는 주로 길가나 주변에 피는 야생화를 쫓아다닌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꽃이 핀 곳을 찾아 걷는 것을 즐겨한다. 지금 겨울은 꽃이 없는 계절이라 꼼짝하지 않고 글을 쓰고 있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동네 화단이든 길가의 꽃이든, 중랑천이나 산자락에 핀 꽃을 탐색하는 일을 한다.
야생화들은 꽃이 피기 전엔 잡초처럼 풀포기로 보이지만, 꽃이 피면 꽃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그리고 꽃봉오리가 터지는 순간 대단한 성취를 목전에 두게 된다. 바로 씨앗을 만들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야생초 중에는 꽃송이 하나가 수백 개가 넘는 씨앗주머니로 변신하는 것도 있어서 그 번식욕구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일 년생 보통 한해살이라고 불리는 화초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들고 생을 마감한다. 씨앗에서 시작해서 씨앗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씨앗하나에서 발아된 싹은 새로 여러 송이의 꽃을 피운다. 꽃을 피우고 나면 처음 심은 꽃씨보다 많은 씨앗을 수확할 수 있다. 백일홍이나 분꽃은 집에서도 쉽게 키울 수 있는데, 한번 키워보면 꽃이 피고 씨앗을 맺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꽃송이에서 씨앗이 만들어지기까지 꽃잎, 줄기, 뿌리까지 모두 소진해 버린다. 씨앗은 여물어 알이 차지만 뿌리까지 바짝 말라 바스락 거리며 부서진다. 스스로 완벽한 흙(부엽토)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해살이는 씨앗을 계속 불려 가면서 자손을 다시 탄생시킨다.
특히 향기가 근사한 분꽃은 꽃잎을 떨군 자리에 검고 통통한 씨앗을 남겨주는 정직한 씀씀이를 가졌다. 그래서 보상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나를 안심시켜 준다.
나는 매년 백일홍과 분꽃을 화분에서 키우고 꽃씨를 받아 다음 해 다시 심어 꽃을 본다. 한해살이 꽃은 매년 같은 꽃이 피지는 않지만, 항상 꽃을 보여주며 나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좋은 자연 선생님이다.
백일홍과 분꽃@songyiflower 인스타그램
한해살이와는 달리 여러해살이 화초들은 장인의 근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화초는 일 년 동안은 꽃도 없이 이파리만 무성하다가 그다음 해에 꽃을 피운다. 오랫동안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겨울 동안 줄기를 모두 걷어내고 납작한 잎들을 둥글게 피어 로제트(장미 꽃잎 같은) 모양이 된다.
한국의 토종 야생화 중 하나인 벌개미취는 이파리와 줄기가 모두 사라진 듯 땅속뿌리만 남는다. 뿌리는 죽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랑초는 온실에선 쉬지 않고 꽃을 피우지만, 실외에선 덩이뿌리만 남아서 월동을 하고 다시 봄이 되면 풍선을 불어놓은 듯 풍성해진다. 사람이 제각각이듯 식물들도 모두 다른 스타일로 삶을 살아간다.
꽃은 혼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기도 하지만, 곤충이나 새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수정이 반드시 필요한 식물들은 자신들에게 딱 맞는 조력자가 있어야 후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려한 치장을 하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꽃 않은 수술과 암술, 꽃가루, 꿀처럼 살림살이가 들어있다. 자신에게 가장 맞는 곤충이 와주길 기다리며, 잊지 않고 자신을 찾은 손님에게는 꿀이나 꽃가루 같은 답례품도 준비해 둔다.
얼마 전에 읽은 <꽃 해부 도감> 책 서문에 저자는 꽃을 이렇게 표현했다.
식물에게 꽃은 살아가는 이유, 그러니까 후손을 남기는 일에 꼭 필요한 도구예요. 꽃은 단순히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에요. 식물이 살아남고자 애쓴 흔적이지요.
식물로 살아가는데 꽃이 꼭 필요한 도구라는 것에 나 역시 동의한다. 식물이 꽃을 피우기 위해 만들고 견디는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을 피운다는 건 쉽지 않은 과정들을 거치고 난 후 결과를 표현하기도 한다.
내 삶은 어떻게 꽃을 피워야 할까?
식물의 삶에서 도구로 쓰이는 게 꽃이라면, 내 삶의 도구는 글쓰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활짝 핀 꽃을 누군가가 찾아내듯, 내 글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