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한철보다 못한 나의 침체기
깊은 상처와 슬럼프
분명 시작은 꽃양귀비가 몇 송이 필 때부터였다. 잘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는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글을 쓰면 좋아질 거라고 믿었는데, 더 힘들어지기만 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글을 쓰라며 토닥거렸다. 쉽지 않았다. 속을 감추는 것은 비밀을 털어놓는 것만큼 어려웠다. 멍은 감출 수 있을지 몰라도 나를 속일 수 없었다.
꽃양귀비가 피는 중랑천을 매일 같이 찾아갔다. 붉은 꽃이 만발해질 때가 되면 슬럼프 같은 시간도 확실히 설명할 수 있을 듯했다. 정리 못한 나를 대신하듯 꽃이 먼저 정리를 시작했다. 끝도 없이 덮였던 초록잎은 노랗게 변했고, 붉은색으로 뿌려졌던 꽃은 빛을 잃어버렸다. 붉은 잎의 꽃양귀비는 씨앗 주머니로 바뀌었다. 이제 한철을 보냈고 얼마 남은 꽃들도 곧 뒤따라 떠날 것이다.
꽃이 열매가 되었는데 그동안 나는 어떤 결실을 맺었을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것은 분명했지만, 꽃은 제 할 일을 하는데 나만 제자리에 멈춘 듯했다. 불쾌한 기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대신 계속 이런 말을 나에게 걸었다.
'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 걸까?
' 완전한 답을 얻을 수 없는 걸까?'
꽃양귀비 씨앗처럼 나도 완성되는 모습을 바랐는지 모르겠다. 꽃양귀비는 늘 선명한 붉은색으로 나를 지지해주었다. 내편이 되어주는 남편처럼 말이다. 꽃이 한철인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오래 쓰러져 있으니 꽃들에게 미안해졌다.
꽃의 한철보다 못한 나의 침체기는 꽃양귀비 꽃 씨앗처럼 또 다른 것을 남겨주었다. 제자리에 멈춘 듯한 시간은 오히려 차분히 기다리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는 편을 택했다.
한철 꽃처럼 그 시간은 지나간 듯했지만, 나에게 그 한철은 다시 돌아올 테니까 말이다. 기억 속에 무수히 피었던 꽃들이 종이 위에 빼곡하게 쓰인 단어들로 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