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꽃이 마법처럼 나타날 때가 있다. 매일 드나드는 출입구 옆 화단에 낯익은 꽃이 보였다. 종지 나물이 피었던 자리에 돋아난 풀은 점점 키가 커지더니 종모양의 꽃이 딸랑거리며 피었다.
'초롱꽃이네! 엄마는 보기 싫다며 다 뽑아 버렸는데, 섭섭할까 봐 내 집 앞에 찾아왔구나!'
얼마나 반가운 친구인지 비가 내리는 줄도 모르고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안부를 물었다.
'내가 볼 줄 몰라 네가 자라는 줄도 몰랐구나!'
역시 친구는 연락 없이 찾아와야 더 반가운 법인가 보다.
비오는날 초롱꽃@songyiflower인스타그램 서울에서 직장생활은 달려가는 기차를 탄 기분이었다. 5년이 넘게 한 직장을 다녔지만 다른 곳에 인생이 또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았는지 금방 이직을 했다. 작정하고 2주 동안 달리는 기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가족이 그리웠다. 가족들의 일상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동생들은 각자 일이 바빴고, 엄마도 직장을 다니셔서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았다. 덕분에 엄마의 정원을 독차지했다.
정원엔 주인은 떠났지만 여전히 많은 아빠의 화분들이 있었다. 엄마가 아끼는 난초와 다육식물, 텃밭작물들이 마당을 꽉 채우고 있었다. 사실 나와 엄마의 취향은 너무도 달랐다. 엄마의 정원에서 내 눈길을 끈 건 돌 틈에 잡초처럼 핀 초롱꽃과 덩이 나물 정도였다. 초롱꽃은 연한 보랏빛을 냈는데, 흰색과 진한 보라색이 잘 섞여 훨씬 고운 빛이었다. 옆에서 보면 종모양이고, 바닥에 엎드려 안을 들여다보면 작은 우산을 쓴 기분이었다.
진한 보라색 초롱꽃과 아래서 본 초롱꽃@songyiflower인스타그램 초롱꽃을 매일 보며 집밥도 먹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기대만큼 가족들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초롱꽃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고 온 게 후회되었다.
그리고 한참 뒤 막 돌을 지난 아이를 데리고 고향집을 찾았다. 호박잎 국과 성게 미역국이 참 먹고 싶었다. 여전히 엄마는 바쁘셨고, 아이의 기저귀만 바꿔주다가 서울로 왔다. 먹고 싶던 음식을 먹지 못했지만 더 아쉬운 건 따로 있었다. 초롱꽃이 하나도 없었다. 개화가 늦어져 그런가 보다 싶어 정원을 다 뒤져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엄마 그 보라색 초롱꽃들은 어디 갔어? 혹시 다 죽은 거야?
"무슨 꽃? 모르겠는데..."
"왜 종모양 꽃 말이야. 내가 전에 예쁘다고 했던 거."
"아 그거? 난 그 꽃 싫더라 그래서 다 뽑아 버렸다."
또 몇 년이 흘렀고 칠순이 되신 엄마를 위해 가족들이 모였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초롱꽃이 딸랑거리며 대문 앞에서 반겨주었다. 아이들은 종처럼 생긴 꽃을 보며 신기해했다. 그리고 엄마는 말했다.
'그거 다 뽑은 줄 알았는데 그 틈에 가지 하나가 나왔더라.'
정원을 가진 분들 중엔 키우던 꽃이 갑자기 싫어질 때가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분은 매발톱꽃이 싫어져서 모두 뽑았는데, 해마다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피어난다고 했다. 그분은 매년 봄마다 잡초처럼 뽑는다고 푸념을 하셨다.
어쩌면 물건처럼 취급하기엔 식물들은 차원이 다른 존재인 듯하다. 갖고 싶을 땐 간절해서 아끼고 사랑하지만, 반대로 쉽게 죽어버리기도 한다. 또 별생각 없이 데려온 화초가 떠나지 않고 견디는 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올해 엄마 정원엔 초롱꽃이 피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도 묻지 않기로 했다. 혹시 정원 주인의 눈에 띄면 뿌리째 뽑아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