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송이가 뚝 떨어졌다

견뎌야 하는 시간

by 무쌍

봄부터 여름과 가을로 이어지는 계절엔 야생화 지도를 그린다. 계절마다 꽃 지도가 완성되었다. 장미가 지면서 봄도 데리고 갔으니 지금은 여름 꽃 지도를 그리고 있다.


햇마늘을 팔기 시작하면 능소화가 피었다. 한 해 동안 먹을 마늘을 장만하는 것은 엄마에겐 중요한 일이다. 냉동실에 마늘이 다 떨어져 가니 적당한 가격의 마늘이 나오면 잊지 말고 사야 한다. 매번 마늘을 사던 가게가 있었는데, 새로운 동네로 왔으니 다른 가게를 찾아야 했다. 여기저기 마늘 구경하다 보니 그리운 것이 있었다.

'그곳에 능소화는 여전히 피고 있을?'

한낮 뜨거워진 공기가 소화를 떠올리게 해서, 익숙한 곳이 잠시 그리워졌다. 주택가 골목 담장엔 치렁치렁 능소화가 피었다. 6월이면 능소화는 항상 별 탈 없이 피어 주었다. 마치 단골가게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능소화가 필 무렵 마늘을 산지도 열두 해가 되었으니 차근차근 계절이 주는 고마움을 알게 된 듯하다. 그리고 능소화가 지기 전에 적당한 가격으로 마늘도 살 수 있을 듯하다. 새로운 단골가게를 만난 듯 능소화가 핀 곳을 찾았다. 벌써 한송이가 뚝 떨어져 있다. 집 나선 나처럼 자유를 얻은 능소화가 있다니 반가웠다.

능소화 꽃 @songyiflower인스타그램

하나 둘 떨어진 능소화를 볼 때마다 기다리는 것이 있다. 뒤이어 올 긴 장마다. 또 장마가 그치면 여름은 더 뜨겁게 이글거릴 것이다. 화끈한 더위가 할 만큼 다 태우고 나면 다른 계절이 될 것이다. 급한 내 성미는 벌써 8월의 가을 기운을 상상한다.

능소화가 피면 마음에 문이 열리듯 나는 태양을 향해 걷는다. 조금만 견디면 가장 기다리는 계절이 그다음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시간을 믿기로 했다. 모두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오늘 쓴 글이 내일을 불러오리라고 말이다. 지칠 때도 있지만 계속 시간을 쓰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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