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러 영국에 가고 싶었다

오만과 편견

by 무쌍

우산을 쓰고 나무를 보러 나갔다.

화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는 아니지만 나의 관심을 듬뿍 받는 이끼 낀 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키아나 나이틀리가 엘리자베스로 주연한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는 영국 더비셔 지역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 맘껏 볼 수 있다. 영화 속 배경 전체가 좋았지만 풍경에 딱 들어맞는 날씨가 있든 듯 비가 내리는 날, 바람이 부는 날 장면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봤다. 난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에 빠진 연인들 표정보다 그 뒤로 펼쳐지는 자연과 저택, 정원을 느라 시간을 보냈다.

영화 오만과 편견 중(피크닉 장면)

위에 있는 사진은 영화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외삼촌 부부와 여행 중에 피크닉을 하는 중이었다. 마치 거인의 발 위에 앉아 있는 듯이 사람들의 모습은 작기만 했다. 령이 몇 년이나 된 건지 가늠할 수 없는 나무에 앉아 사과를 먹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리고 잠시 시끌벅적한 가족들과 떨어져 아름다운 자연 품에서 자유롭게 편안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나도 갖고 싶었다. 그녀처럼 자유를 누릴 기회가 온다면 그 나무를 찾아가고 싶었다.

과연 내가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자유롭지 못한 전업주부가 아닌가? 정 안되면 가족을 모두 설득해 영국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바다 건너 저 큰 나무를 만나러 가고 싶다.

그때부터 인가보다. 주변에 나무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특히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들은 더 그랬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나무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책 <오만과 편견>에 영화 속 그 장면이 있는지 궁금했다. 나무 아래 피크닉 장면이 소설에 묘사된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면은 없었다. 대신 작가가 직접 등장해 여주인공이 떠난 여행을 설명하는 짤막한 문장을 발견했다. 소설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 여행지 풍경 묘사를 생략하는 이유를 말하는 제인 오스틴이 반가웠다.

더비셔에 대해서나, 그곳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명승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은 아니다. 옥스퍼드, 블레넘, 워릭, 케닐워스, 버밍엄 등등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더비셔의 작은 한 부분만이 지금의 관심사다.
-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중에서

난 작가의 속내도 모른 채 소설 속 문장으로 영국의 유명한 명승지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싶고, 아름드리나무이야기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작가는 그게 소설의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 잠시 웃음이 나왔다.

제인 오스틴은 역시 질질 끌지 않고 쉽게 설명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


은행나무에 공생하는 이끼

비가 흠뻑 내린 다음날 놀라운 나무를 찾았다. 집 뒤 길가에 작은 숲처럼 서있는 키 큰 나무들 중 하나였다. 은행나무는 이끼를 옷처럼 입고 있었다. 마치 겨울 코트를 걸친 듯 결 따라 자란 이끼가 따뜻해 보였다. 보기엔 까실한 초록 잔디와 다르게 털실처럼 보송한 이끼를 손으로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좁은 보도블록 틈에 나무는 초록 이끼로 자신의 늙고 딱딱한 피부를 감춘 듯했다.

평소엔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나무껍질이 었다가 비가 흠뻑 내린 날이 되면 수분팩을 한 듯 초록으로 바뀌었다. 스티커처럼 붙은 작은 이끼도 있었고, 키 큰 메타세쿼이아 나무엔 이끼가 덕지덕지 나무 꼭대기까지 붙어 있기도 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영국에 온 듯, 비 맞은 나무가 이끼를 두르고 나를 바다 건너 먼 나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나무에 기대 글을 쓰고 있는 제인 오스틴을 만난다. 무슨 핑계를 데서라도 매일 산책을 나선다는 그녀는 얼마나 많이 걸으며 작품을 써 내려간 것일까?

이끼가 낀 나무를 찾으려면 비가 내린날을 기다려야 한다

그녀가 찾아갔을지 모를 나무도 비슷한 모습이었을까? 210년 전 과거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오랜 세월 이끼처럼 지금도 끝나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은 충돌하고, 사랑과 조건이 결혼에 주는 영향은 남아 있는 듯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잠시 나무를 올려다 보며 자유를 느낀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충동도 느낀다. 맑은 날엔 이끼가 숨어버리듯 나도 반복된 일상으로 돌아간다.

보고 싶은 걸 찾는 건 자연 안에선 어렵지 않은 듯하다. 쇼핑몰에서 내 취향의 옷을 고르는 것보다 쉬웠다. 언제든 내 앞에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와 줬다. 영화 속 나무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자유로운 시간이 그리워지면 언제든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끼는 꽃처럼 계절의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비뿐만 아니라 겨울에 내린 눈에도 이끼는 찾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