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드리우면 밖으로 나가 걷는다. 기분을 끌어올리는 최고의 약이기 때문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다른 대책이 없었다.
찬 바람이 무서웠지만 아직 남은 태양을 따라 걷기로 했다. 한참을 걸어도, 영하 15도의 얼어버린 공기 속에선 몸도 열을 내지 못했다. 중랑천은 가장자리가 얼어 있었고, 수변공원은 마른 억새 말고는 입을 꾹 다문채 고요했다. 중랑천의 침묵은 추위를 타는 내게도 가혹했다. 뭔가 어긋난 기분이 들면 좀처럼 태도도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일이 문제였지만 사실 나빠진 기분을 떨쳐낼 약이 필요했던 것이다.
걷다 보니 고뇌에 빠진 감정들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느 순간 휘발되어 자취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동안 내 몸에 진동했던 냄새를 바람이 씻겨준 기분이다.
중랑천(개망초 사이로 보이는 기생초)@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오직 내딛는 발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야생화 꽃밭이 있던 곳까지 와 있었다. 지난 늦여름 자전거 도로 옆은 야생화들이 꽉 차있었다. 제 몸에 주어진 대로 태양을 향해서 피어있다. 빛이 내리쬐는 곳에 핀 꽃은 반짝이며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꽃 한송이의 존재감은 다르지 않았다. 기생초가 한송이가 피더니 매일 다른 꽃송이를 피워 냈다. 언듯 보면 금계국이나 황화코스모스 같지만, 기생초는 꽃잎이더 선명하고 화려하다. 태양의 빛을 다 담은 듯 검붉은색의 꽃술과 노랑색 가장자리에 붉은색 꽃잎이 강렬하다. 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뜨겁게 피어 있었다.
중랑천의 야생화(기생초 꽃무리)@songyiflower 인스타그램
계절마다 피었던 야생화들의 흔적을 지켜보며, 내 감정이 다르게 변한 것이 아니라 꽃처럼 다 피어 소진된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돌아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여름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을 보관해두었다면, 지금 이 순간 꺼내 몸을 녹이면 좋겠다.지는 해를 뒤로 하고 서둘러 꽃 피울 감수성을 붙들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