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고 바이러스는 사라진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잠시 숨어있을 뿐 다가오는 가을이면 더 큰 유행이 올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한 여름 아이들은 뉴스에서 떠들썩하게 진단검사를 했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아파트 같은 라인에서도 확진자 가족이 나와서 한동안 조심해야 했다. 가까운 곳에 바이러스가 움직이고 있었다.
바이러스 소동이 코앞으로 지나가자 가족들은 더 애틋해졌다. 한동안 외출하지 않던 아들은 학교에서 준비물 꾸러미를 배부한다고 나갈 준비를 하느라 신나 있었다.
마스크가 땀으로 젖었지만, 중랑천 수변도로 위를 아이는 "너무 좋아요."라며 계속 폴짝폴짝거렸다. 두 계절을 그냥 보내고 가을을 앞둔 수변공원에는 완전히 만개한 분홍색 낮달맞이꽃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난 이 광경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런데 아들이 웬일로 "엄마 사진 찍어요." 라고 했다. 기분이 좋은 아들도 같이 앉아 꽃구경을 했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우리 옆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만히 꽃을 보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먼저 "참 순하게 생겼네."
그러자 할머니는 "색이 참 순하게 곱네. 생긴 게 순하구먼" 하셨다.
할아버지도 "보고 있으니 좋네, 참 좋은 꽃이네." 하셨다.
나는 잠시 두 분이 가는 모습을 부럽게 쳐다봤다.함께 걸어가는 두 분의 모습이 정말 순하고 아름다우셨다.
분홍낮달맞이꽃(향달맞이꽃)@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이 꽃은 향기가 좋아서 향 달맞이라고도 한다. 노란색이 흔하지만 분홍색도 요즘은 많이 볼 수 있다. 밤에 피는 달맞이꽃과 닮은 꽃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달빛처럼 은은하게 나는 꽃이다. 향기를 모르고 맡았다가 다시 또 맡아보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다. 아들에게 꽃의 향기를 맡아보게 하고 싶었다. 아이가 코를 대더니 "엄마 진짜 냄새가 좋네요." 하며 마스크를 올렸다. 난 아들이 꽃향기를 기억했으면 했다. 그리고 '순해져라 순해져라' 주문을 외웠다. 아이가 앞으로 힘들고 답답한 일을 맞이 하더라도 유순하게 잘 넘기길 바랬다. 순한 이 꽃처럼 그렇게 말이다.
기대 없이 나선 외출에 반가운 꽃들이 기다려주었다. 예전처럼 맘껏 누릴 수는 없어 아쉽지만, 그날처럼 함께한 순간이 잘 찍은 사진처럼 소중해지기도 했다.
바이러스 전문가들이 예견한 대로 대유행은 왔다. 다시 바이러스가 조용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새 봄 아이들이 학교에 재 시간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