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한파경보가 내린 1월 우리 부부는 결혼식을 했다. 나는 신혼집을 꾸밀 때 화초를 가장 먼저 골랐다. 아파트 베란다지만 작은 정원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막 겨울이 시작되는 계절이라 고를 수 있는 화초가 많지 않았다. 서툰 살림에 화초들도 적응을 못했는지 얼마 못가 거의 죽어 버렸다. 작년까지 산세베리아와 사랑초는 매년 결혼기념일을 함께 했지만, 산세베리아 뿌리가 눈 녹듯 물러지더니 영영 떠나버렸다. 올해 결혼 기념엔 사랑초만 유일하게 남았다. 나와 오랜 굴곡의 시간을 보낸 유일한 식물 가족이다.
사랑초는 나비 같기도 하고 클로버 같기도 한 이파리가 자란다. 줄기가 따로 있지 않고 땅콩같이 생긴 덩이뿌리에서 잎사귀를 피워낸다. 이파리는 해가 뜨면 마치 단풍잎처럼 하늘을 보며 평편하게 펼쳐졌다가 저녁이 되면 꽃봉오리처럼 오므라든다. 잎을 따서 화병에 꽂아 두면 뿌리를 내리고 번식을 할 수도 있다. 생장이 끝난 잎은 바짝 말라서 아래로 축 늘어진다. 죽은 잎을 손질해줄 때마다, 이상하게도 내 머리카락에서 찾은 흰머리를 자르는 기분이 든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화초를 너무 사랑하는 탓이라고 해두어야겠다.
사랑초의 꽃은 해가 드는 방향으로 핀다
연보라색 꽃은 일조량이 좋은 계절에 쉬지 않고 피어난다. 돌돌 말린 꽃봉오리가 아침 태양에 고개를 들며 활짝 꽃잎을 연다. 시들어 갈 때는 꽃잎을 한 장씩 뒤로 말아 간다. 꽃에선 차분하고 단정한 기품이 느껴진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면 사랑초가 차란 차란 거리며 바람마저 우아하게 바꿔놓는다.
아이들도 꽃 앞에선 투덜거리지 않는다. 아무 일 없이 베란다에 나갔다가 사랑초 꽃을 보면 가슴 어딘가 편안해지기도 한다.
큰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였다. 아이가 친구들에게 사랑초 꽃이 피었다고 자랑했는데, 아무도 그런 꽃은 본 적 없다고 했단다. 아마 이름을 지어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참 지난 일인데도 아이는 사랑초 꽃이 피면 그때를 떠올린다. 늘 곁에 있는 가족처럼 아이도 사랑초를 아낀다.
문득 사랑초의 영문 이름이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다가 꽃말을 알게 됐다. 꽃말이 참 놀라웠다.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사랑초를 살 때 이 꽃말을 알았다면키우는 걸 좀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사랑초의 꽃말에 완벽하게 동의하는 일이 있었다. 몇 해전 겨울이었다. 삽시간에 잎을 떨어뜨리고 죽은 듯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거실로 옮겨 놓았다면 얼어 버리지 않았을 텐데 미안했다.
다시 봄은 찾아왔고, 빈 화분이 된 줄 알았던 흙위로 작은 이파리가 솟아났다.죽은줄만 알았던 사랑초가 겨울잠을 잔 듯 예전보다 더 풍성하게 잎들이 돋아났고, 곧 꽃도 피우기 시작했다.
십일 년 동안 오래도록 함께 한 사랑초는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존재다. 매년 결혼 기념일마다 사랑초가 우리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