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꽃이 마음에 물들었다

치유의 시간

by 무쌍

꽃씨를 심을 땐 기대가 컸다. 아이는 꽃잎이 연한 분홍이 예쁘지만 빨간 꽃인 줄 알았다며 섭섭해했다. 꽃이 지기 전에 손톱에 물을 들여야 하는데 시큰둥했다.

아이의 관심은 씨앗을 심을 때 가장 높다가 잊어버린다. 자신이 뭘 심었는지 기억하지 못고, 꽃이 피거나 열매가 달리면 자기가 심어서 큰 거라고 우긴다. 사실 심은 건 맞으니 그렇다며 맞장구를 친다.

봉선화는 층층이 꽃송이가 피었다. 오늘따라 꽃이 많이 달렸구나 싶었는데, 손톱 물을 들인다며 아이가 뜯어 금방 헐렁해졌다.

화분에 핀 봉선화꽃

아이의 손톱에 으깬 봉선화 꽃잎을 올렸다. 비닐로 감싸고 리본을 묶는데 밀감 밭에 살던 아이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손톱 물을 들이는 아이와 그 아이는 같은 나이었나 보다. 여름방학엔 늘 밭에서 일하는 부모님을 따라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큰 창고 옆 수국나무 아래 봉선화가 잔뜩 피었다.

다홍색, 분홍색, 보라색, 연분홍색 , 하얀색 꽃들은 색색이 피어 하나씩 골라 따도 한 손 가득이었다. 비닐봉지에 꽃잎을 담았다. 그렇게 모은 꽃잎은 냉동실에 쌓여갔다. 봉선화가 피기 시작하면 엄마가 언제쯤 손톱 물을 들여 주시려나 기다렸다. 일로 지치다며 매일 다음날로 미루는 엄마를 기다릴 수 없었다. 떼를 쓰듯 엄마를 졸졸 쫓아다녔다. 잠들기 전 엄마가 날 불렀다. 그동안 모은 꽃잎이 절구에 으깨진 채 담겨 있었다. 소원을 이룬 듯 손톱 하나하나에 리본이 달렸다. 그런데 엄마 손가락이 피가 나고 있었다. 랩을 뜯으며 손가락을 깊게 베인 것이다. 하얀 손가락 뼈가 보일 정도였다. 아빠가 달려와 엄마손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갑자기 봉선화를 감고 있는 손이 부끄러워졌다. 괜히 엄마한테 떼를 쓴 거 같았다. 주눅이 잔뜩 들어 조용히 잠들었다. 손톱 물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밀감 밭에 봉선화꽃은 다시 피지 않았다.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날을 기억하는지 말이다. 엄마는 기억나지 않으신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걸까? 밀감 밭 아이는 죄책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까?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를 아프게 했다는 죄책감을 갖은 듯했다.


양손을 칭칭 감았더니 과자를 못 먹겠다며 한 시간도 안돼서 그만 하겠다며 아이가 왔다. 아이들이란 정말 즉흥의 대왕이다. 이쑤시개를 주며 과자를 찍어 먹으라고 설득했다. 제대로 안되면 엄마가 다 잘못한 걸로 누명을 쓸게 뻔했다. 게다가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첫눈이 빨리 내려줬으며 좋겠다. 아이의 첫사랑은 도대체 누구인지 첫눈 올 때까지 손톱을 안 깎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다행인 건 화분엔 봉선화가 자라고 있다. 유독 한 개만 꽃이 먼저 피었던 것이다. 봉선화가 여름 내내 피어나면 만회할 기회는 많아질 테니 말이다.

아이 손톱에 귤빛으로 물이 들었다

아이의 손톱엔 귤빛으로 예쁜 물이 들었다. 손톱에 물든 귤빛을 보니 아이는 귤이 먹고 싶다며 웃는다.

밀감 밭 아이는 이제 자랐고 엄마가 되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늘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일로 아이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베인 상처가 오래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봉선화꽃으로 손톱 물을 들이겠다고 해준 아이에게 고마워졌다. 내 아이의 손톱처럼 밀감 밭에 살던 아이 마음에도 예쁜 귤빛이 물들었다.

아이들에게 가능한 자연스러운 것들과 잘 지내게 하고 싶다. 파릇파릇한 초록 식물을 가까이 두면 알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을 말이다. 내 아이와 나, 그리고 우리가 걷는 길엔 늘 꽃이 있거나 풀과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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