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지지 않는 여름처럼

글 많이 쓰세요

by 무쌍

어디를 둘러봐도 부담스럽지 않은 곳은 어딜까? 꽃을 좋아하지만 사실 가장 편안한 곳은 초록 숲이다. 고개를 들어 나무 사이로 보이는 작은 하늘을 제외하고는 온 사방이 나무로 둘러싼 곳을 좋아한다. 꽃을 발견하면 반갑긴 하지만 자꾸 꽃으로 눈이 가니 쉴 수가 없다.

뭔가 다시 점검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답을 찾기 위해서 다시 길을 나섰다.

중랑천 산책로 야생초가 촘촘히 꾸민 무늬는 질감이 살아있는 초록 매트가 되었다. 황금색 금계국이 뒤덮던 곳은 나팔꽃 덩굴의 하트 모양 잎이 자근자근 깔아놓았다. 튤립이 알록달록 했던 곳엔 초록빛 야생초들이 완전히 점령해버렸다. 덤불 속엔 강아지풀과 달맞이꽃, 차풀과 벼과의 바랭이가 알맞게 섞여있었다. 그리고 듬성듬성 나팔꽃 덩굴과 돌콩 덩굴이 한 자리씩 차지했다. 록색 풀이 엉킨 모습을 보니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아직 한낮은 뜨거운 계절이다. 그런데 더위가 한풀 꺾기며 내 어깨도 힘이 좀 빠진 기분이다. 나의 여름은 무더위보다 더 무섭게 타오르는 것이 따로 있었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사연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춰두었는데, 날마다 하나씩 꺼내는 기분이었다. 모든 열정을 글 쓰는 일로 쏟아내려고 한 듯 느껴졌다.

더위가 하루 종일 뜨겁게 사그라지지 않는 것처럼, 늘 내 주변엔 방학중인 두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땀이 흐르는 열기만큼, 머릿속은 뭔가를 쓰려고만 했다. 어쩌면 뜨거운 열기로 음식을 요리하는 것처럼, 갖고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매일 한 접시씩 내놓은 기분이었다.

한 접시에 들어갈 만큼 딱 맛있는 것만 쓰고 싶다.

아니면 뜨거운 열기로 우아한 무늬가 그려진 접시를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똑같은 접시를 빚어 가마에 구운 다음 예리한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틀에 찍어낸 것이 아니라 오직 손으로 만든 수제 접시로 말이다. 한 번 더 열로 구워 완성된 접시는 누군가에게 내보이기 위해 기다리 있었다.

접시가 완성이 되자마자 어서 진열대에 올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선보인 접시는 어딘가 어색하기만 하고, 만족스럽지 못했다. 자신과의 싸움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일까? 그냥 모른척하고 싶지 않았다.


싱싱한 바지락을 바락바락 소금물로 해감해 봉골레 스파게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머릿속은 스파게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있었다. 8개월 남짓 쉬지 않으려고 했던 열기로 몸이 단련이 된 듯 느껴졌다.


일 년 전 여름이었다. 어느 행사장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수필가와 시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작가들 사이에 난 겉모습은 분명 젊은 사람이었지만, 작가로 사시는 분들은 더 젊고 열정이 넘쳐 보였다. 시 부러운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글 쓰고 싶다고 하는 나에게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해주셨다.

"아직 젊으니까, 글 많이 쓸 수 있어요. "
"글 많이 쓰세요. 멈추지 말고, 계속 쓰세요.
그럼, 좋은 글 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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