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향집에선 무엇보다 햇빛을 많이 쓸 수 있다. 단점이 없다는 남향집은 살아보니 신비로운 일들이 많았다. 여름엔 숨어있던 해가, 겨울엔 정오까지 거실 깊숙이 직사광선으로 들어왔다. 남쪽 창문으로 해가 고개를 밀어 넣고 안부를 묻는 듯 느껴졌다.
이글 거리는 해에게 전날 널어둔 빨래를 포근한 빛으로 바짝 말려달라고 하고, 산책을 나서지 못하는 날엔 쨍쨍 쏟아지는 해를 등지고 일광욕도 시켜달라고 했다. 이사 오고 첫겨울인데 베란다는 여전히 포근했다.
겨울이면 아파트 베란다도 한파를 견디지 못했다. 별수 없이 보온재로 화분을 꽁꽁 묶어주거나 거실로 모두 옮겨와야 했다. 그런데 남향인 베란다에선 꽃이 매일 핀다. 주인공은 바로 사랑초다.
사랑초(옥살리스)2021.12.10@songyiflower인스타그램 이미 뿌리만 남기고, 겨울잠을 자야 할 사랑초가 온실처럼 따뜻한 유리창 안에서 매일 꽃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시인 에밀리 디킨스의 집을 소개한 책을 보게 되었다. 그녀가 살았던 집은 '디킨스 홈스테드' 박물관이 되었고, 자원 봉사자들이 정성껏 정원과 온실을 관리하고 있다. 책 속에서 낯익은 화초를 발견했다. 내가 키우는 사랑초가 그녀의 온실 정원에도 놓여 있었다.
'옥살리스(사랑초)가 있으면 여기는 언제나 여름이었다. 옥살리스가 집안 식구들과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이들 머리 위로 떠도는 소박한 향처럼 위에 걸린 바구니에서 향이 퍼져 내렸다.'
- 마타 맥다윌 <에밀리 디킨슨, 시인의 정원> 중에서
정원을 사랑하는 가족들은 바깥을 돌봤다면, 온실은 그녀 만의 영토였다. 집에만 칩거하는 그녀를 위해 아버지가 남동쪽에 온실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온실을 좋아하던 그녀는 '아주 작긴 하지만 당당하다'며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녀처럼 사랑초와 화분들을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긴 한파가 오지 않았으니, 긴장은 되지만 나도 온실이 생긴 기분이다. 남쪽으로 난 통창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겨울 해는 내게 뜻밖에 선물을 주었다. 연보랏빛 사랑초 꽃을 보며 그녀와 잠시 만난 듯 황홀해졌다.
그리고 감히 그녀에게 '디킨슨 당신처럼 아름다운 언어를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중얼거렸다.
또 다른 황홀경은 반대쪽에서도 벌어졌다. 봄과 여름 사이 북쪽으로 난 현관문을 열어 두었다. 잔잔하게 부는 바람도 좋았지만, 하루 종일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이 집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베란다 창만큼 탁 트이지 않아도 북쪽 방 창문을 열어두면, 액자처럼 보이는 바깥 풍경이 편안한 기분이 들게 했다. 창 너머 보이는 나무는 초록으로 싱그러웠고, 가을엔 노랗고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햇볕이 바로 내리쬐지 않지만, 해가 만든 빛은 균일하고 아름다운 파장을 느끼게 했다. 나무를 둘러싼 공기는 자연의 빛으로 내 눈을 깨끗하게 치료해주었다.
북쪽 창가엔 하루 종일 비슷한 빛이 감돈다. 어둡거나, 암울하지도 않고, 냉정하거나 무섭지도 않다.
아름다운 시인의 언어처럼 부드럽고, 소박하며, 단호하고, 솔직하다. 그리고 내세울 만하고 실용적이다.
북쪽 창에서 뿜어져 들어오는 빛은 내면까지 잔잔하게 해주는 듯했다. 뭔가 집중하기에도 깊은 탐구를 하기에도 알맞은 듯 느껴졌다.
북쪽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하루 종일 일정하다. 오래전부터 집안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이런 빛이 절실했다고 한다. 해가 옮겨 다니며 직사광선이 들어와 눈을 피곤하게 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아마도 책상 위에서 끈기 있게 자기만의 세계를 쌓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랬을 지도 모른다.
쉽게 끝이 나지 않는 외롭고 고단한 작업을 지치지 않게 도와준다는 걸 나도 알게 되었다.
아침마다 나는 식탁의자에 앉아 북쪽 창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가만히 중얼거린다.
'저 나무 아래 고요한 소리를 갖고 싶어요.' 그리고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남향집에선 무엇보다 햇빛을 많이 쓸 수 있다. 그리고 남향이 좋은 건 바로 반대편 북쪽 창이 있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