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아우라를 찾아서

글쓰기

by 무쌍

작가들은 도대체 어디에 자신의 아우라를 숨겨두는 것일까? 수필을 쓴 지 얼마 안돼, 수필 공모전이 궁금했다. 등단과 상금이 탐이 났던 순진한 욕심도 있었다. 선정된 작품들과 심사위원들을 평을 눈여겨 읽었다. 검색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찾아본 것 같은데, 한결 같이 느껴지는 건 '아우라'라는 단어였다. 아마도 그동안 나는 문체라는 말이 더 익숙했었는지, 아우라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모든 작가의 글에 서려있는 고상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나도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했었다. 글쓰기를 아마도 자격증 취득 정도로 여겼다는 것이 맞겠다. 한심하게도 말이다. 그래도 책을 좋아하니 읽는 욕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읽다가도 문득문득 또 쓰고 싶었다. 욕구를 모른 척 하기는 쉽지 않았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어릴 때부터 굳어진 성격 때문 일까? 글을 어떻게 쓰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작법, 글쓰기, 작가수업 등 많은 책을 여러 권, 여러 번 읽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업시간에 딴짓하다가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이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밑줄을 그었지만, 알아낸 것이 별로 없었다.


작가들은 공공연하게 글 쓰는 비법을 알려주는 듯 하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글쓰기를 근육운동으로 비유하는 작가의 글을 읽은 적 있다. 같은 운동기구로 똑같이 훈련했지만, 완성된 근육은 각자 개인이 타고난 몸이 좌우된다고 했다. 한번 생긴 근육도 쓰지 않으면, 되돌아가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말에는 동의했다. 근육처럼 글은 계속 써야 한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을 마구잡이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썼는지 알듯 했다. 오직 '쓰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였다. 가장 먼저 '쓰고'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반복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쓰고'라는 시작을 하려고 했지만, 죄책감은 벽을 마주 보듯 날 가로막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은 도서관 벽 앞에 눈물을 머금게 했다. 말라 붙은 나뭇가지와 담쟁이가 그림처럼 보였다. 이파리가 없어도, 꽃이 없는 데로 아름다웠다. 가지가 앙상해 보이기는 커녕 섬세한 선을 따라, 금이 난 듯 벽은 부서질 것 같았다. 양손으로 조금만 밀어내면, 나를 막고 있는 벽이 조각조각 부서져 버릴 듯했다. 용기가 필요했지만, 큰 힘이 들 것 같지 않았다. 해보고 싶었다.


두 손을 다시 키보드 자판기에 올렸다. 다닥거리며 소리가 나니, 단어를 쳐내려 가는 손목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행일까? 여전히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으니 말이다.

작문법 책들로 글쓰기는 배우지 못했다. 대신 평소에 즐겨 있는 책들이 내게 알려주었던 것 같다.

작가들의 숨겨둔 의도를 찾아내다 보면 말이다. 그들의 아우라는 분명 존재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책이 모두 한 사람이 쓴 글이 아닐뿐더러, 창작은 쓰고 난 뒤에 해야 하는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의 수행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수행은 책이 되어 보관되는 것이었다. 우라는 배울 수 없었다. 석가모니가 지혜를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한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시작한 수행 길은 참 끝이 없어 보인다. 비슷비슷한 길을 걷다가, 숲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은 것처럼 을 쓴다. 글 하나에 행운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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