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눈물

내면에 차있는 강물

by 무쌍

서늘한 바람 때문인가? 달콤한 커피믹스가 생각났다. 얼음조각을 넣어 차갑게 마시는 커피가 아닌, 차가워진 손을 감싸줄 따뜻한 온도가 필요했다. 평소 쓰는 크기보다 작은 잔에 뜨겁게 끓인 물을 넣었다. 커피는 물에 닿자마자 녹았다.


싱크대 상부장을 열어둔 걸 모르고, 모서리에 머리를 콕 박았다. 머리가 하얗게 아팠다. 손을 갖다 데니 피가 묻어났다.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며, 방금 마신 커피처럼 머리 전체가 뜨거워졌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몸에 난 상처가 참을 수 없이 아팠다. 눈물이 저절로 났다.


다친 머리는 좀 지나니 나아졌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내면 어딘가엔 출렁거리며 흐르고 싶은 강물이 있었나 보다. 울고 싶었는데 핑계가 없었던 것 같다.


내면에 차있는 강물은 평소엔 꽁꽁 얼어버린 얼음처럼 느껴졌다. 냉동실을 열기 전까지는 보이지도 않는 얼음이다. 그러다 문이 열리고 손에 닿으면 주르륵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똑똑 떨어지며 점점 얼음덩어리는 작아지고 눈물이 되어 계속 흐른다. 얼음이 덩어리가 얼마나 큰지는 알 수 없지만, 얼음을 다시 냉동실에 넣지 않으면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냉동실로 얼음을 넣어보려고 혼자 애쓰지만, 빗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모두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 계절이 바뀌었으니, 차가운 얼음이 싫어졌다. 더 이상 눈물로 흘려버릴 얼음조차 치워버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자주 있지는 않지만 어떤 계기로 시작된 눈물이 싫어진 얼음을 녹이는 일이 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결혼식 하는 날 아침 신부 화장을 하는 중이었다. 이 복잡한 결혼식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났다. 얼굴에 연신 붓과 스펀지가 오갔고, 갑자기 올라온 뾰루지를 가리고 수많은 점들을 숨겼다. 그런데 내가 울 것 같은 얼굴일까? 모든 신부들에게 하는 말일까?


"절대 울면 안 돼요. 눈 화장 다 지워지면 안 되니까. 눈물 나도 참아요."

"에이 안 울어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결혼식 하다가 울컥하기라도 한다는 걸까? 머릿속엔 어서 복잡한 결혼식이 빨리 끝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지로 떠나고만 싶었다. 아빠가 앉을자리에 남동생이 앉아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남동생이 안쓰러웠는지, 아빠가 날 지켜주지 않아서 섭섭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하객들에게 남편이 불러준 노래에 고마웠을지도 모른다. 그분의 예측이 맞았다. 나는 사진 촬영 직전까지 계속 울었고, 사진 촬영을 위해 다시 메이크 업을 해야 했다.


두 번째 수술을 하고 나서였다. 의사는 얼핏 지나는 말로 두 번째 수술 뒤엔 좀 더 아프고 진통이 오래갈 거라고 했다. 그래도 난 처음보다 안심했다. 수술하고 나서 잘 회복하면 될 거라고 믿었으니까 말이다. 수술을 잘 됐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진통제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몸이 부서질 듯 아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얼굴을 본 간호사들이 난리가 났다. 안쓰러워하기보다는 무슨 문제가 생긴 듯 담당의사가 달려왔다.

"어디가 불편해요? 왜 울어요?"

"아파요."

"내가 두 번째는 아프다고 했잖아요. 아이고."

"......"


뭐지? 우는데 혼나는 기분은 열 살쯤으로 돌아갔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는데 무릎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그런데 자전거가 망가져 울 수 없었다. 그날처럼 아팠고 서러웠다. 의사는 진통제를 더 처방했고 하루를 꼬박 울었더니 잠이 잘 왔다.


어른이 되고 나선 복잡한 감정들을 쏟아내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눈물이 나면 얼음처럼 얼려두었던 감정들까지 는 기분이었다.

한참 울고 나면 진통제를 먹은 듯 효과를 줄 때가 있다. 우는 것에도 치유의 힘이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늘 "울면 안 된다."라고 아이들에게 말했던 게 미안해졌다. 머리는 좀 아팠지만, 어쩌다 눈물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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