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수련꽃

미운 아기오리

by 무쌍

한바탕 비가 내린 시골집 정원엔 알록달록 온갖 꽃이 피었고, 은 나무는 잎을 차란 차란 반짝이고 있었다. 이 집주인 할머니 앞으로 소포가 도착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수선화 구근이 왔구나! 눈이 내리기 전에 심어두어야겠다."

주문한 구근 개수가 맞는지 세어보는데 상자 안엔 돌돌 말린 포장이 하나 더 있었다.

'할머니 올해는 수련 모종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라며 카드가 꽂혀있었다. 매년 원예상에 구근을 주문하는데, 매번 꽃모종이나 씨앗을 선물로 보내왔다.


홀로 사는 제인 할머니는 자식을 키우듯 정원을 사랑했다. 하지만 수련은 물에서 키우는 식물이라 당장 연못을 만들 수 없어 빗물을 받아두는 양동이에 넣었다.

"곧 추워질 텐데, 일단 여기서 지내거라"


할머니의 주특기는 덩굴장미 키우기였는데, 집을 빙 둘러 피는 장미꽃을 마을 사람들도 좋아했다. 할머니는 장미를 다루는 것도 꽃과 식물을 키우는데도 모르는 게 없는 초록 손을 가진 분이셨다. 그해 겨울 감기에 걸린 할머니가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다.

할머니의 집과 정원은 마을에 기증되었는데, 수련은 연못도 구경하지 못하고 양동이 속에 썩는 냄새만 풍겼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정원에 핀 꽃들과 자랑거리인 장미꽃을 더 보고 싶어 했다. 수련은 정원에서 가장 미운 존재가 되었다.


"농장 옆에 오리를 키우던 연못이 있는데 거기 둡시다." 장미꽃을 보러 왔던 농장주인은 양동이에 있던 수련을 갖고 가 못에 넣었다. 농장 주인은 너무 바빠 수련을 보러 오지 않았다. 그 사이 수련은 조금씩 몸집이 부풀어가며 수면 위로 잎을 늘어뜨렸다. 덩굴장미가 담장을 기어오르듯 수련은 물 위에 잎을 하나씩 띄우며 웅덩이를 채워갔다.


어느 날 수련은 어느 정원사의 집으로 팔려갔다. 정원사의 정원에 수영장처럼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엔 이미 다른 수생식물들이 있었다. 수련은 처음으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한 친구들을 만났다.


"넌 무슨 색 꽃이 피니?"

"꽃? 그게 뭔데?"

"넌 아직 꽃을 피운 적이 없구나?"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한 수련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정원사가 일하는 곳은 정원사 말고도 다섯 명이 더 일하는 큰 정원이었다. 정원 주인은 화가였다. 화가는 꽃을 그렸지만,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루는 그 집안사람들이 거울 앞에 서서 단장을 했다. 가의 아내는 유일하게 갖고 있는 깃털 달린 모자를 썼다. 낡은 옷만 입고 집안일을 하던 그녀의 얼굴은 벌써 발그레해졌다. 딸들은 긴 리본 장식을 한 모자와 겹겹이 레이스가 찰랑이는 드레스를 입었다. 화가와 아들도 타이를 메고, 포켓엔 정원에 핀 장미꽃을 꽂았다.

그들이 간 곳은 집에서 좀 떨어진 강가였다. 한껏 멋을 부린 그들은 끔씩 도시락 바구니와 양산을 들고 소풍을 나갔다. 도시락은 직접 담근 자두 술과 사과주스, 치즈와 라즈베리 잼을 곁들인 빵, 그리고 텃밭에 자란 오이를 넣은 샌드위치였다. 가족은 소박한 음식으로도 화려한 파티에 초대받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었다.

" 오늘도 강가에 가나 보네."

" 아니 저 사람들은 뭘 하고 먹고산담?

" 그림을 그린다고 하잖아요."

" 아니 그림 한 장이 얼마나 하길래 저렇게 정원에 저렇게 많은 정원사를 데리고 있는 거야?"

" 참 이상한 사람들이야."

동네 사람들은 일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리며 정원을 가꾸는 그 집안사람들이 이상하기 만했다. 화가는 꽃이 아니면 그림을 그리지 않을 만큼 꽃을 사랑했다. 정원사들은 주인의 주문대로 꽃씨와 모종을 구해서 부지런히 땅에 심었다.


매일 정원사들이 잎을 닦아주고 썩은 줄기를 잘라주었다. 수련은 태어나 처음으로 넓고 깊은 물속에 살게 되었다. 양옆엔 수양버들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바람이 불면 시원한 소리를 내는 대나무들이 내려다 보이는 강처럼 큰 연못이었다.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한눈에 볼 수 없을 만큼 길었다. 수련은 발이 닿지 않을 만큼 깊은 물속을 마음껏 떠다녔다. 정원사들은 매일 작은 배를 타고 물 위에 뜬 수련 잎을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정원 주인은 이제 물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을 먹는 시간을 빼고는 날마다 수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련은 자신이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자유로운 물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화가의 수련 그림이 비싼 가격에 팔렸다.


수련은 아침에 꽃을 피웠고 밤이 되면 다시 꽃을 물속으로 넣었다. 화가 아침이면 그림을 그리고 밤이 되면 잠이 들었다. 화가는 항상 수련 앞을 떠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시간은 흘러 화가는 눈이 멀고 나이가 들어 제인 할머니처럼 별이 되었다. 화가가 남긴 수련 그림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화가의 정원에 피어 있는 수련을 보러 몰려든다.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요."

"이게 바로 화가가 그린 수련이군요."


물 위로 련꽃이 피면, 지켜보는 누구나 화가가 된 듯 매료되어 금방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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