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도 작은 서점이 많다고 한다. 제주 전역이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빽빽한데, 작은 가게들도 제주로 몰려들어 관광지도엔 빈 곳이 없는 듯하다.
예전에 살던 귤밭은 마을과 한참 떨어진 중산간이었지만, 그 근처에도 작은 서점이 여럿 있다고 한다. 제주는 고립되고 결핍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서울만큼 복잡해진 듯했다. 어디서든 책을 볼 기회가 많아졌으니 반가운 소식임은 분명했다. 혹시 귤밭 아이가 살던 시절에도 그런 서점이 있었다면 섬을 떠나지 않았을까? 나는 더 이상 고향을 찾지 않으니, 작은 서점들을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 구경도 힘들었던 귤밭에 작은 서점이 성황리에 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문득 어린 시절 은신처 같았던 귤밭 책방이 떠올랐다.
책을 좋아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책 보다 먼저 좋아한 건 종이였다. 흰색, 크림색의 깨끗한 종이를 무척 좋아했다. 귤밭에선 나뭇가지나 돌멩이, 이름도 몰랐던 야생화가 내 장난감이었다. 양 손은 풀냄새와 흙이 섞인 유기농작물 같은 모습이었다. 그 손에 귤밭 냄새가 섞이면 숙성이 잘 된 곰팡이 냄새처럼 느껴졌다. 아무렇게나 흙이나, 뒹구는 돌멩이, 풀잎을 만질수록 손이 더러워졌다. 그런데 책은 손이 더러워질 일이 없었다. 책을 만질 때마다 깨끗한 느낌과 산뜻한 기분이 좋기만 했다.
그리고 책 속의 인쇄된 글자를 가만히 손가락으로 쓰다듬듯 만지는 걸 좋아했다. 손에 닿는 촉감은 누군가 나를 그렇게 쓰다듬어 주는 기분이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조금 전보다 삶의 이치를 알게 된 듯 나를 우쭐하게 해 주었다. 그 기분이 좋아 책을 끼고 살았는데, 책장 넘기는 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은 산들바람처럼 들렸다.
귤밭 집 내 작은 책방엔 수없이 읽었던 창작 동화집이 있었다. 지은이 소개에 나온 작가들은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인데, 어디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궁금했다. 작가들은 먼 과거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아이와 날 만나게 해 주었다.
책은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동심을 어른들이 이해 못할 수도 있다고 귀띔해줬다.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종이꽃을 접었지만 엄마의 선물을 대신할 수 없던 마음도 있었다. 아이가 한 거짓말은 어른들이 금방 알아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책 속의 아이들은 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지 미리 알려주는 듯했다.
토끼 찻집에 겨울이 오고, 미운 너구리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했을 때 모른 척하지 않는 토끼 가족을 기억한다. 왜가리가 내는 왝왝 글자만 채워진 동시도 재미있었다. 왜가리를 만나진 못해도 왜가리는 내 곁을 노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동물에게도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동화책엔 그림도 실려 있었다. 삽화는 많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눈이 커다랗고 얼굴이 귀여운 송희는 아빠를 만나러 천국으로 갔다. 송희가 천국에 갈 때 타고 갔던 말은 이마에 뿔이 달려있었다. 그 말은 와흘리에 사시는 작은할아버지가 데리고 다니는 조랑말처럼 생겼지만, 책의 삽화는 검은 선으로 만 그려져 있어, 삐삐에 나왔던 아저씨라는 하얀 말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 말을 타려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조랑말이 무섭기도 했다.
지금 제주엔 내가 없고, 오래전 제주엔 귤밭 작은 책방이 있다. 책을 펼치면 귤밭 작은 책방으로 간다. 그곳엔 젊고 건강한 어른들이 있었고, 어린 내가 살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보고 있던 책을 덮었더니, 내가 언제 어떻게 여기로 온 건지 얼른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제주 귤밭 책방이 내 것이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젠 어린아이는 자랐고, 귤밭도 없다. 그런데 겨울을 앞둔 이맘때가 되면 어디서든 귤을 판다. 귤을 보면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되살아나, 나를 귤밭 어린 시절로 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