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감의 속사정

귤 창고에 있던 감

by 무쌍

아침부터 문자가 요란했다. 감귤 수확이 한창인 제주에서 귤을 보내겠다며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작년 겨울 이사를 가면 그만 받겠다고 했지만, 포기 못하는 마음들은 집요했다.


못 받겠다는 의사를 겨우 전했나 싶었는데, 고도 없이 배송 문자 두 개가 왔다. 두 박스가 온다는 소리였다.

말 못 하는 속사정은 이렇다. 귤밭 주인 딸이었지만, 주인은 세상에 없으니 행여 귤을 먹고 싶은데 못 먹을까 봐라는 위로다. 그런 내가 귤을 돈 주고 사 먹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귤 맛은 신맛과 단맛이 엉뚱하게 섞인 맛이다. 상품이 오는 건 아니라서 주변에 조금씩 나누기도 하지만, 온전히 소비는 내 가족이 해야 한다.

내 입맛은 두 아이를 낳고 나니 바뀌었고, 귤 맛은 한 내 마음처럼 점점 시큼하고 싱겁고 쓰고 밍밍해졌다.


귤을 받고 답례를 하면 되지만, 이런 관계도 이젠 과거의 업보처럼 느껴졌다. 일종의 신세 갚음일까? 의무감 같은 것일까? 잘 모르는 감정이 담긴 귤은 택배 상자에 담겨 내 앞으로 도착한다. 이젠 그만두고 싶었다. 내게 보내오는 '무엇이든' 고맙게 먹어야 하는 금기를 깨고 싶었다.


배송시간에 맞춰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두 개의 귤 박스를 열어보니, 하나는 귤이고 다른 하나는 감이었다. 감이 들어 있다는 걸 예상하지 못한 나는 박스 안을 보며 멍해졌다.

그 감의 정체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감의 속사정을 잠시 받아 줘야 했다. 작년까지 태풍에 모두 떨어져 수확할 게 없었던 감나무였다. 올해는 별일이 없었을까? 예전보다 훨씬 양이 많았다. 깍지벌레가 붙어있고, 나방이 쏘거나, 유난히 까맣게 무늬가 많았다. 감꼭지는 바짝 말랐고, 가지에서 자른 부위가 금방 수확한 건 아닌 듯 보였다.


어둑하고 서늘한 돌 창고에서 얼마나 있다가 내게 왔을까? 까맣게 익어 들어간 감이 절반이었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아직 단단했다. 감나무에서 익은 감은 아닌 듯싶었다. 아마도 귤을 따기 전에 수확한 감이 었을 것이다. 감이 돌 창고에서 지낸 이야기가 궁금했다.

말을 못 하는 감이지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돌 창고가 여전히 그대로 인지, 층층이 쌓아 올린 돌 틈으로 바람은 여전한지, 창고에 수확한 귤은 얼마나 쌓였는지 궁금했다. 내게 오느라 창고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감을 먹어 보고 싶었다.


이상했다. 감은 떫지도 달지도 맛있지도 않았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싱거운 감이 내게로 왔다. 내가 기대한 맛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고 싶었지만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나도 감에게 말 못 하는 속사정이 생겨버렸다.


이전 04화제주 귤밭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