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저 너머를 꿈꾼다

버리고 싶은 감정

by 무쌍

떠오르는 대로 종이 위에 써 내려가듯, 늘 저너머를 꿈꾸며 사는 날이 많았다. 만족스럽지 못한 지금을 탈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라리 원하는 물건을 갖고 싶다는 주문의 글이라면 이루기가 쉬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눈앞에 없는 상황을 상상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글에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욕망을 담고 애원을 하듯 간절한 편지를 보냈다. 단어에 감정의 이름을 붙이며 문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글은 의미없는 감정만 쏟아내 버리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매달리던 마음이 찬바람에 얼어 버렸다. 잘 지내다가도 머뭇거리는 감정이 나타난다. 아름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 듯하다가도 다시 멀어진 기분이 든다. 나를 둘러싼 것을 즐기는 마음도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장미덩굴이 화려하게 걸쳐졌던 담장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당당하게도 붉은 장미의 싱그러운 꽃잎은 내 앞에 피어 있었다. 찬바람은 냉정하게 글을 쓰라고 채근했지만, 나는 꽃을 보러 다니던 포근했던 날들이 그리웠나 보다. 겨울의 태양은 은근하게 빛을 내지만, 나는 땀이 날 정도의 뜨거운 온도가 필요했다. 초를 태우는 불꽃처럼 붉은 장미 한 송이가 내게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장미 한 송이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소소한 행복의 순간을 기억나게 해 주었고, 냉정해진 마음에서 간신히 벗어난 듯했다.


대청소를 하듯 불필요한 것들과 낡은 과거를 끊어 내야 하는 것일까? 지우개로 지우듯 없어지지 않는 감정들을 버릴 수 없었다. 잊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다시 기억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단념하지 못해 또 약해진 것은 아닌지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사실 내게 필요한 건 지금을 일깨워주던 '꽃'이었다. 찍어둔 꽃 사진을 하나씩 넘겨보며 나에게 상냥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지우고 싶은 감정은 못 본 척하고, 눈앞에 꽃 한 송이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지금 올라오는 감정에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다시 나는 저 너머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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