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처럼 꽃송이처럼

과거와 마주보기

by 무쌍

노트 틈에 꽂아두었던, 동백꽃 사진은 과거의 어디론가 나를 데려갔다.

함박눈이었다. 하얗게 날리는 눈에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나갈 수 없었다. 체념으로 갇힌 채 문 너머 눈이 쌓여가는 것이 보고 있었다. 마당 중앙의 감나무는 겨울 휴가를 즐기고 있었지만, 동백나무겐 완벽고 아름다운 겨울이었다. 아버지 정원에 가장 늦게 피는 꽃나무로 붉은색과 분홍색 동백을 마주 보게 심어 두셨다. 단하고 매끄러운 록잎 틈 대롱대롱 꽃송이가 잔뜩 달렸다. 히 겹꽃인 분홍 동백은 어느 명품 브랜드의 코사지를 떠올리게 하며 카멜리아라고 영어식으로 불러주는 것이 더 어울렸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에 꽃은 굴을 손으로 가린 듯 나뭇잎으로 살짝 가린 채 눈송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연분홍빛의 동백은 봄날 벚꽃처럼 여리고 수줍은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주 어려서부터 창밖을 동경했다. 가족이란 틈바구니에 억눌린 동심은 햇빛이 쏟아지는 창밖을 내다보는 것으로 따뜻한 위안이었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비밀스럽게 지키던 상황들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나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증이다. 이런 강박증이 있었다는 걸 엄마가 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더 분명하게 깨달았다. 썽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이었다.


아이들은 모든 걸 기억한다. 어른들은 잊어버리지만 아이들은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두 귀로 들은 언어나 마주한 상황보다 순간 느껴진 감정을 그대로 기억하기 때문에 그 기억은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보다 소리를 지르는 어른의 표정과 목소리가 크게 새겨졌다. 그리고 내 존재감까지 뒤흔들게 했다. 대단히 중요한 걸 망쳐버린 기분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 돼'라고 엄격하게 되새 긴 날이 많았지만, 슬며시 또 억누르고 있던 감정은 어둠으로 나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깜한 영화관의 스크린처럼 기억 불러왔다.


아이가 컵을 엎질렀을 때 흘린 것을 닦아주고, 괜찮은지 물지만, 화를 내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래도 쏟아버려 못 마신 음료수를 채워야 했다. 쏟아진 음료수가 아깝고, 닦는 것이 번거롭지만 그건 내 속마음일 순 있어도 내색하지 말아야 했다. 마실 음료수가 없어져 당황하는 건 아이 쪽일 테니까 말이다.

장이 바뀌면 깨닫는 것은 더 쉽다. 내가 뭔가를 엎질렀을 때 "엄마, 괜찮아?"라고 물어보며, 쏟아진 걸 함께 닦아 주는 아이의 대응은 엄마인 내게도 큰 위로가 된다. 잘못한 건 엄마지만 아이의 도움은 참 고다. 나도 번거로운 일을 만들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혼내야 할 일과 실수라고 알려줘야 할 것들은 늘 아슬아슬 경계에 있다. 그래도 아이에겐 혼내야 할 것보다, 실수라고 괜찮다고 할 경우가 더 많았다. 아이가 일부러 컵을 쏟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것을 후회를 하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지나간 건 잊어버려. 중요하지 않아." 아무리 불편한 상황도 이미 지난 과거라는 것을 아이들도 잘 안다. 그래서 엄마가 건네는 말 한마디가 아이에겐 자책하는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기분을 쌓아두지 않고 버리는 것을 연습시키는 것이 엄마로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동백꽃 사진이 잊고 있던 어둠 속에 아픈 상처를 불러온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내가 바라는 건 나약하고 어렸던 나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나도 과거의 감정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 했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기억을 대물림처럼 반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 아직도 과거를 붙들고 있으면 안 돼.'라는 식의 엄격함보다는 '힘들었겠다.'라고 답을 해야 줘야 했다. 사진 속의 동백꽃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처럼 그 기억도 그냥 사진이 되었다. 사진 한 장처럼 존재하지만, 인생에서 그 존재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그렇게 사진 한 장씩 감상하듯, 상황이 생길 때마다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과거로부터 온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깊은 밤 수면을 위한 어둠처럼 꼭 필요하고 다정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 겨울 눈을 맞으며 동백꽃을 찍을 땐 몰랐다. 내가 그 마당을 완전히 떠날 거라는 것도 동백나무가 그루터기만 남을 거라는 것도 말이다. 눈 덮인 곳에 생생하게 었던 꽃송이처럼 과거의 기억은 다시 편집되었다. 억누르고 있던 비밀을 더 감출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드러난 불행은 모두 편집되고 일부는 삭제된다. 그리고 다시 구성된다. 가 불행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가장 예쁜 꽃송이를 사진으로 보관하듯 좋은 것만 남겨두는 중이다.

눈송이처럼, 꽃송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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