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나를 어렵게 만든다

글쓰기

by 무쌍

가끔은 그림자도 그리워질 때가 있다. 너무 밝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늘진 풍경에서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추위를 타서 그런지, 고향이 남쪽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특히, 맑은 날 밝은 태양 아래 걷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어쩌면 꽃들이 핀 시간에 맞춰, 내 몸이 맞춰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꽃을 찍다 보니 그늘진 에서 내가 원하는 사진이 찍혔다. 그래서 햇볕이 눈부시면 내 몸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그늘을 만든다.

내 그림자를 마주 보는 순간에 잠시 어지럼증이 느껴지는데, 큰 숨을 들이쉬고 나면 깜깜했던 눈앞이 보였다. 등 위로 내리쬐는 태양이 따뜻한 온기로 포근해지면, 그늘진 내 그림자 안은 작은 방이 되었다. 빛이 강해서 안보이던 꽃은 선명하고 진한 색으로 그윽한 꽃잎을 보여주었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다가가면, 책상에 마주 앉은 듯 꽃은 더 가깝고 애틋해졌다. 꽃이 주는 생기가 내게도 전해져서 몸은 충전된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래 머물진 못하지만, 나는 이런 순간을 즐긴다. 만 찍으러 다닐 때는 몰랐다 글을 쓰고만 싶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나를 어렵게 만든다. 글쓰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듯하다. 감추고 있던 내면의 비밀 상자를 열어보고 싶었다. 밝은 것이 아닌 어둡고 은밀하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라도 말이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나의 숨겨진 영역을 알고 싶었다. 글을 쓰는 건 나를 만나는 일이었다. 타인으로 향했던 호기심이 모두 나에게만 쏟아졌다. 글을 쓸수록 점점 아슬아슬해졌다.


태양을 등지고 내 그림자를 마주 하는 것처럼 글쓰기는 어두운 곳을 보게 했다.


며칠 전부터 광고전단지처럼 복도에 붙은 낙엽이 있다. 집 주변에 가장 많은 느티나무의 잎이었다. 지난주에 비가 내린 날부터 붙어 있었는데, 가만 보니 거미줄이 붙들어 놓은 것이었다.

글쓰기는 거미줄에 붙은 낙엽처럼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걸려들었으니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떠날 수 없다. 낙엽은 바짝 말라 부서질 때까지 거미줄에 걸린 채 있을 것이다. 작은 잎이 나처럼 느껴져서 일까? 매일 오가며 잘 있는지 보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낙엽처럼 글쓰기도 좀 지쳐가고 있었다.

반대로 내가 거미줄이라면, 무엇이든 거미줄에 걸려 영감이 된다면 좋으련만, 그런데 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낙엽 하나만 달랑 붙은 거미줄은 주인도 버리고 갔나 보다. 거미줄이 낡고 쓸모없어 보였다. 버려진 거미줄처럼 나의 영감 주머니도 후줄근 해졌다. 낙엽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상실과 체념이었다. 떤 것도 내 곁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다시 낙엽 한 장을 붙들고 길고 긴 그리움의 글을 쓴다.


꽃을 찍으려고 마주하는 그림자처럼, 글쓰기는 어지럼증을 느끼게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공간 사이에서 느껴지는 충돌 같은 것이었다. 그럴수록 더 깊은 곳에 나를 만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글쓰기는 나를 어렵게 만들지만, 가끔은 그림자도 그리워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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