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보여주지 않는 걸 밤은 보여준다

스스로 등불이 되어라

by 무쌍

밤이 찾아오길 기다렸다. 이번엔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 왜 그게 신경 쓰이는지 말이다. 작은 단면을 잘라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붙들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날 신경을 쓰게 만드는 존재는 깜깜한 밤을 비추고 있는 공원의 가로등이다. 더위가 찾아오기 전 어느 늦 봄부터였을 것이다. 자정이 다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왠지 불빛이 비추고 있는 곳은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듯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공원을 꼿꼿하게 서서 불빛을 비추는 일은 고단해 보였다. 외롭거나 쓸쓸하다기 보단, 삶에서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목격한 듯했다.

엄마의 일상도 반복이다. 하루 일과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뒤에야 끝이 났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는 마지막 임무를 마치면 바로 잠이 들기도 하지만, 베란다 너머 보이는 그 불빛을 잠시 내려다보곤 했다. 가족들이 잠든 시간이 고요했지만, 금방 조바심이 들곤 했다. 하루를 온전히 내 의지대로 살았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긴 숨을 몰아쉬며, 하루 종일 안에 숨겨두었던 찌꺼기 감정을 내 쉬는 숨에 싹 버리고 싶다. 창문 밖에 보이는 느티나무 가지를 살펴보며, 아침부터 시작한 하루를 차근차근 펼쳐 보았다. 혹시나 놓친 것은 없었는지, 망설이다가 결정 못한 것은 없는지 말이다.

집 앞에 서 있는 느티나무의 검은 그림자 가지가 많이 흔들리는 날엔 감정들도 쏟아내기가 더 쉬웠다. 머릿속은 나무에 기대서서 흔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상쾌한 기분을 즐겼다.


불이 켜진 공원을 내려다봤다. 공원엔 두 개의 등이 밤새 켜져 있는데,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가로등이 있다. 사람들이 많은 낮엔 등이 꺼져있다가,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는 밤이 되어야 불빛이 들어왔다. 그 아래를 지나는 사람도 없는데 불빛은 꿈적도 하지 않고 바닥을 동그랗게 비추고 있었다. 살짝 고개 숙인 모습은 누굴 기다리는 듯 보였고, 나도 누군가 오길 함께 기다기도 했다.


그 빛은 날 보며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을 열면 멈추지 못하는 나는 사람들과 수다는 지치도록 해봤다. 그런데 갑자기 불빛과 대화라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무거운 발로 걷던 퇴근길엔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다 저런 불빛 아래를 수없이 따라 걸었다. 그땐 거들떠도 안 보던 가로등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에게 왔다. 왜 그 불빛을 신경 쓰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밤은 낮이 보여주지 않는 걸 보여준다

아무래도 난 흰 눈이 내리는 날을 제외하고는 겨울이 싫다. 어서 계절이 지나가길 손꼽아 기다린다. 기다림의 시간을 지루해하지 않으려고 소소한 것들을 궁리한다.


정원사들의 겨울처럼 씨앗을 정리하고, 흙을 기름지게 만들어야 한다. 빈 화분이 정리되면 베란다 정원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매일 비슷한 일을 반복하다 보면 다시 꽃과 채소 씨앗을 심어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했는지, 불빛이 내게 하려던 말 알 듯했다. 밤은 낮이 보여주지 않는 걸 보여주나 보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야 한다.'라는 석가모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가로등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비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한 임무고 소명이었다. 자기 자신을 비추며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 빛은 내가 보지 않아도 늘 같은 시간에 켜졌다가 진다.


언제부터 내게 스스로 빛을 내야 한다고 말을 해 왔을까? 밤마다 그 가로등은 똑같은 불빛을 내며 내게 같을 말을 하고 있었다. 쉽게 얻으려는 욕심 때문에 내게 온 기회를 잃어버린 걸 말이다. 어렵게 배운 것이 진정한 내 것이 되는 것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이 등불이 되 위해, 스스로 빛을 내는 법을 찾고 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니 조바심은 내지 기로 했다. 밤은 낮이 보여주지 않는 걸 보여주었다. 어둠이 내린 밤을 비추는 등불처럼, 내게 찾아오는 밤을 견뎌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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