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 꽃처럼 설렌다

결산 리포트를 받았다!

by 무쌍

어둠은 찬바람을 데리고 왔지만, 태양은 여전히 따사롭다. 추우면 옷을 더 입으면 되고, 다시 더워지면 옷을 벗어 들면 된다. 공기 속에 느껴지는 온도에 맞춰서 몸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은 외부 환경에 민감해서 옷으로 적당히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감정이 기댈 수 있는 옷은 없을까?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가리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향해 늘 웃는 표정으로 다녔던 것 같다. 타인 앞에 나서기 위해서 옷을 입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더 크게 오래 웃음을 지었다.


막상 기쁨을 느껴야 할 땐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웃음은 이미 다른 용도로 익숙해진 것일까? 감정이 보내는 신호를 표현할 수 없었다. 기쁨을 표현하는 감정을 잃어버린 것처럼 얼굴은 굳어버렸다. 주변에 축하의 말에도 반응할 수 없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그때까지도 마음속에 숨겨진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감정을 해석할 용기가 생겼다. 감정이 보내는 신호를 읽는 방법은 시간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나는 칭찬과 축하받는 것에 어색한 사람이었다. 좋은 일이 생겼는데도 자랑을 하거나 들뜨지 말아야 하는 금기가 있었다. 나만 행복하면 안 되는 이유라고 있었을까? 나의 성취는 대수롭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감춰진 거절된 마음을 알지 못했다.


애써 아닌 척 별일 아니라고, 웃어넘기는 평범한 일로 변해버렸다. 그렇지만 속 마음은 "수고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한 번만이라도 내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밖으로 나가지 못한 감정은 무겁게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기쁨도 환희도 순식간에 차가운 불쾌함으로 변해서, 나를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게 했었던 것 같다.


감정을 쓰다 보니 지금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살피는 일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내가 왜 우는지, 내가 왜 불안한지, 왜 즐거운지를 알아채기 시작했다. 느껴지는 것들을 써 내려가다 보니 공허감을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대신에 정체를 모르던 공허감은 여러 가지 감정으로 세분화되었다.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는 감정은 하나도 없었고, 감정 하나하나는 잘 느끼는 법을 배우며, 마음도 적당한 온도를 찾기 시작했다.


빈둥거리듯 꽃 사진을 정리했다. 중랑천에 핀 샤스타데이지 한송이가 뿜어내는 싱그러움을 갖고 싶었다. 이상하게 축 늘어진 감정을 억지로라도 데리고, 글을 써야 했지만, 느릿느릿 모른척하고 있었다.

한송이 꽃처럼 편지가 왔어요

<수고했어, 올해도!> 라며 브런치 활동 결산 리포트가 도착했다. 글쓰기에서 가장 멀리 도망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럴듯한 항목과 숫자들이 나를 좀 우쭐하게 했다.

그동안 내 브런치에 찾아와 주시는 분들에게 내 감정을 있는 대로 쏟아내고 있어 죄송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 내 감정은 "기쁨"이고, 겨울을 앞두고 발견한 한송이 꽃처럼 설렌다. 샤스타데이지가 활짝 웃는 것처럼 나도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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