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처럼 글쓰기

희망의 달력을 걸다

by 무쌍

새 달력을 걸었다. 원래 걸려 있던 달력을 치우며, 한 해 동안 내게 특별한 은 없었지만, 요일과 시간이 정해진 수업에 빠지지 않고 개근한 기분은 들었다. 지난 달력은 쓸모 없어졌도, 배움을 기록한 노트와 스스로 느끼는 뿌듯함은 듯했다. 상이라도 하나 받으면 고마운 소감을 좀 길게 써보고 싶었는데, 역시 난 노력형 인간이 맞나 보다.

인생도 길고 예술도 길다고 믿는다. 나의 사주팔자에 천부적인 재능은 찾아볼 수 없으니, 그랬듯이 붙들 것은 결국엔 잘 될 거란 낙천적 의지 하나였다.

겨울방학은 오전 오후를 모두 자질구레한 일상으로 뒤덮어버렸지만, 일상은 크게 타격받지 않아 다행이다. 그럭저럭 식탁 주변을 맴돌며, 가사와 글쓰기를 함께 할 궁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늘 작심삼일처럼 살고 있다. 연달아 삼일 정도 쓰고 나면 하루는 또 미루고 싶어졌다. 렇게 하루를 느슨하게 보내고 나면, 글쓰기 욕구가 슬그머니 나타나 닦달하며 쓰라고 재촉했다.

'언젠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미루고 미루던 습관을 겨우 깬 듯했지만, 다른 부작용이 생겼다. 상 설거지는 미루게 되고, 집안은 좀 엉망이지만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나도 이젠 어쩔 수 없다고 가족들에게 하소연을 한다.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처럼,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는 도돌이표가 그려진 돌림 노래 같다. 내 의식에서 분리되어 문장이 된 감성에 이름표를 달아주고, 보관함에 제목을 달았다. 금방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글은 나를 철들게 했다. 글로 남겨지는 감정은 나를 위로하려던 것이지만, 앞으로 내가 만날 관계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타인들과 관계에서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돌려서 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해야 할 말은 고 싶었다.

이상했다. 말을 잘하고 싶어서 글을 쓴 샘이니 인생에 대본이 필요했던 것일까? 내 삶의 작가가 되는 것이 곧 내 인생의 주체가 되는 것이 었나 보다.


철학자 페터 비에리의 책 <자기 결정>에는 글쓰기에 대한 효과가 설명되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이 어떤 울림을 가지는지 알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이 울림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순수한지 아니면 냉소적인지, 얼마나 감상적인지, 실망스러운지 아니면 분노해 있는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의 울림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건이지요. <자기 결정> 중에서

그리고 그가 말한 대로라면,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한 사람이 소설을 하나 쓰고 나면 예전과 똑같은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문학적인 글쓰기는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언어적인 활동인 샘이다. 그의 추천대로 나도 소설 하나를 완성하고 싶어졌다. 소설에선 예민하고 냉소적인 주인공이 잘못된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벗어버리고 따뜻하고 다정한 삶을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서 잘못된 것들을 인정하니 남은 것은 희망이었다. 소설 쓰기도 작심삼일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을 듯하지만, 낙천적인 나의 의지를 믿어보고 싶다. 아직 새해는 오지 않았으니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작심삼일처럼 글쓰기에 희망을 걸고 싶어, 새 달력을 미리 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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