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이라면 좋겠다

소설가 조지 기싱

by 무쌍

멀리 여행가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이국적인 풍광을 보며 처음 맛보는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기분처럼, 새롭고 낯선 기분을 기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으로 꽉 들어찬 서가에서 처음 보는 책만 골라 마음껏 펼쳐보고 싶었다.


묶여있던 출입 금지 테이프가 걷히고, 서관이 정상 운영되었다. 도 읽는 사람으로 예전처럼 일상을 되돌리고 싶었다. 한동안 찾지 않은 여행지처럼, 집 주변의 도서관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듯 책을 홀짝거리며 자꾸 읽을거리를 찾으러 갔다. 을 탐닉하던 때로 돌아가 도서관 서가에서 눈에 띄는 대로 책을 골랐다.


책을 펼치면 탐스럽고 갖고 싶은 문장들이 들어있다. 막 꽃잎을 터뜨린 장미 한 송이처럼 향기롭다. 구경에 빠지면 그 문장이 내 것인 듯 기분이 황홀해졌다.


첫 여행지는 조지 기싱의 책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꽃이 많은 계절엔 읽고 싶지 않다가도 겨울엔 그의 문장이 그리웠다.

위대한 예술가인 자연은 평범한 꽃들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만들어놓는다. 이런 꽃들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길 아래 피어난다. 하지만 희귀한 꽃은 따로 은밀한 곳에서, 예술가의 한층 더 섬세한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 봄 편 중에서

조지 기싱의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상록>의 봄 편에 일부이다. 가난했던 작가 헨리가 뜻밖에 유산을 받으며, 시골로 내려가 한가로운 사색을 즐기고 여유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연 속에서 책을 읽으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자아 성찰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계절을 테마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일상이 담겨 있다. 작가의 조지 기싱이 바라던 삶이며, 나도 어쩌면 그런 삶을 오래 꿈꿔왔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책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이미 대출 중이었다. 대신 신간 코너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로운 여행지를 발견한 듯 나는 서둘러 <뉴 그럽 스트리트>를 펼쳐 들고, 19세기 영국 런던의 생계형 작가들의 배고픈 거리로 들어섰다.


영국의 런던에 1830년까지 존재했던 그럽 스트리트(Grub Street)가 있었다. 1695년 영국의 검열법이 폐지되면서 생계를 위해 통속적인 글을 쓰는 작가들의 거주지였다. 문학계의 변두리로 불리며 가난한 작가와 시인, 저가 출판사, 서점들이 있던 거리였다. 거리는 없어졌지만, 그럽 스트리트는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인 작가와 문단을 일컫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계형 작가들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소설은 600페이지가 넘지만 소설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럽 스트리트에 사는 작가들의 삶은 가난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쓰는 일은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가난한 작가와 아내'의 이야기지 읽었는데, 참 많은 생각이 오가서 책을 덮었다.


작가 아내가 글이 안 써진다는 남편에게 묻는다.

"뭐가 문제예요? 글이 왜 안 써지는 거예요?

"새로 시작할 때마다 당신에게 말하기가 부끄러웠어요. 스무 장쯤 쓰고 나면 용기가 없어져요. 내가 쓴 게 한심해서 계속 쓸 수가 없어요. 내 손가락은 펜을 잡기를 거부해요. 단순히 글자 수만 치면 3부작보다 더 많이 썼을 거예요. 하지만 다 폐기했어요."


그럼 아내가 바로 " 당신의 그 음울한 작가 의식 탓이에요. 시장에 내보내기에 충분했다고요."


남편의 말을 다 듣고 나면, 다시 아내는 차분하게 말한다. "우리가 부유했다면 당신은 대단히 훌륭한 글을 썼을 거예요." "이 책을 끝내서 팔아 치우고 다음번에 더 좋은 책을 쓰면 돼요." 라며 설득한다.


작가 남편은 작품을 다시 구상하기 위해서 아내에게 말한다.

" 예전에 쓰다가 관둔 이야기 중 하나가 더 생생하게 다가올지도 몰라요. 한 시간만 산책하고 올게요.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산책을 나간 그는 현실처럼 깜깜한 어둠 속을 걸어야 했다. 이미 기진맥진한 머릿속이지만 절망적인 기분을 밀어내야 했다. 그는 머릿속을 뒤지며 새로운 책의 인물과 동기와 상황들은 찾아야 했 때문이다.



대화로 나오는 문장들은 모두 소설 속에 나온 대로 옮겨왔다. 잠시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떠올려보게 했다. 작품 분량을 채우면 월세를 낼만한 돈을 받을 수 있지만, 작가 남편은 자신의 글이 돈으로 환산되는 현실과 자신의 가치, 그리고 창작에 대한 괴로움이 모두 엉킨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내와 돈이라는 현실을 위해서 나머지는 견뎌내고 있었다. 소설을 더 읽어보면 그 작가의 치열한 글쓰기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의 영국의 출판시장을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하지만, 읽을수록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듯 느껴졌다.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나는 다시 '나의 글쓰기'로 돌아온 듯했다. 자유를 누리고 싶었는데 작가의 현실을 쓴 고전을 읽은 기분이다. 글은 분명 누군가가 읽어줘야 하는 것이고, 작가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지만 글이 돈이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드라마틱한 운이 필요한 듯했다.


잘생긴 작가 조지 기싱은 써놓은 문장들도 잘생긴 것 같다. 마흔여섯 젊은 나이에 추웠던 겨울 폐렴으로 떠나긴 했지만, 생전에 작품을 인정받아 집필만으로 생활을 할 수 있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주의 걸작으로 꼽히는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세기 영국 런던 그럽 스트리트로 떠난 여행은 며칠은 더 머물러야 끝이 날 듯하다. 소설의 엔딩은 그의 삶처럼 절반은 해피 엔딩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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