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닮은 데가 많아요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by 무쌍

때는 1957년 영국 런던이다.


전쟁은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도 많지만, 또 미망인이 되어 살아야 하는 여인들의 이야기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대전은 끝이 난 1950년 전후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국 드라마엔 그런 소재들이 참 많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속 마플 할머니도 전쟁에 남편을 잃었다.


전쟁은 많은 후유증을 남기지만, 대영제국으로 불리던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식민지에서 전쟁을 많이 치러야 했으니 말이다. 전쟁의 그림자만큼이나 영국은 우리와는 다른 일상을 가진 듯싶다.


상류층은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사교계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지만 일반 서민들은 빠듯한 일상을 살아야 했던 시대였다.


여전히 귀족이 존재하고 하녀를 부리는 호사를 누리는 상류층이 있지만, 우주의 시대를 시작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시민들의 긍정적인 모습도 함께 공존하던 때였다. 성에게 참정권이 없었던 시대 그럼에도 여성들이 살던 시대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 시대에서 살다온 건가 싶을 정도로 시선은 그 당시로 간다.




영화 <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는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에이다 해리스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오래전 사람처럼 그 당시의 사람들이 입었던 의상과 생활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영화 예고편엔 크리스티앙 디올 드레스를 사러 파리로 가는 에이다의 모습이 명랑하게 보였지만, 순진하게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만큼이나 나도 놀랐다.


그 당시 명품 드레스를 사는 건 500달러 현금을 내고 맞춤 드레스를 사는 일이었다. 세상에 단 하나만 만들어지고 2주가 걸리는 제작 과정을 기다려야 하는 드레스라는 걸 그녀도 나도 몰랐다.

어렸을 때 맞춤옷을 팔던 가게가 있긴 했지만, 그 가게에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호주머니가 넉넉한 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맞춤복이 다 만들어지는 날엔 옷을 입고 동네를 돌던 한 아주머니가 있었던 것 같다. 옷은 어디서 쉽게 살 수 있지만, 지금 내겐 자신의 몸에 맞춰서 디자인된 옷을 입는다는 것은 상상을 못 할 일이다. ​


​영화 속에는 단정한 원피스나 블라우스에 스커트 차림을 한 여인들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에이다의 평소 옷차림도 보기 좋았다. 늘 깔끔하게 손질한 머리에 모자를 쓰고 손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그녀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늘 친절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수긍하고 도와주는 그녀였다.



영화에선 청소부라고 번역되었지만, 그녀는 가사도우미를 하며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고용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그녀에게 늘어놓고 나가버리고, 남의 험담을 하고, 투덜대며 짜증을 늘어놓거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그녀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렇다고 임금을 제때 주는 것도 아니면서 시간을 줄이거나 귀찮은 일을 더 시키는 것을 그녀는 받아들여야 했다.


특히 여자 고용인들은 엄마에게 생떼를 쓰는 못된 딸처럼 온갖 일을 떠넘겼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는 당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는 전쟁과 빈부격차, 노동자와 고용인, 경제문제 등 무거운 주제들을 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친구들과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듯싶었다.


영화는 반전도 있었고, 답답한 듯 동화 같지 않은 슬픈 엔딩도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에서 울컥해졌다.


​​

우린 닮은 데가 많아요.
남의 뒤치다꺼릴 해주고 매사를 세심하게 다듬죠. 꼭 필요한 존재인데 드러나질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없으면 만사가 꼬여버리죠.​​


주인공 에이다의 대사였다. 긍정적인 그녀의 성격이 잘 드러난 대사이기도 했다.


보고 싶은 면만 보면 동화 같지만, 사실 집에 돌아와 빈 침대에 누운 에이다를 보면 생각이 많아졌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그녀는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지만, 자신만을 위한 시간도 필요했던 것 같다. 영화 속 에피소드는 드레스를 사러 가는 일이었지만, 사실 나 자신에게도 가치 있는 소비를 해본 적이 있는가 묻게 했다. 명품이란 가치가 아니라 소유하고 싶다는 순수한 의미로 말이다.


고가라서가 아니라 '내 수준에? 내가 무슨?'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닫아 버린 기회들을 이젠 열어 두어야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가 나오고 한참이나 지났지만 볼까 말까 망설이기만 했다. 늘 족들과 함께 볼 영화를 고르게 되어서 인가보다. 오랜만에 혼자 보고 싶던 영화를 골랐다.


영화의 엔딩은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여주면서 끝이 났다. 정말 갖고 싶었지만 빼앗겨 버린 기회가 돌고 돌아 시간이 걸려도 내게도 와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하게 했다. 그녀의 드레스처럼 말이다.


비가 내리고 축축한 연휴였지만 영화 한 편이 즐겁게 마무리하게 해 주었다. 영화도 끝났고, 비도 그쳤으니 산책 가기 딱 좋은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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