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로 생각하기

낙엽 여행 다녀왔어요

by 무쌍

밤새 내린 비로 세상이 깨끗해졌다. 아이들의 전면 등교를 하자, 남편과 약속이나 한 듯 동네 공원 산책을 나섰다. 우리 부부의 자유여행권 유효기간이 한 시간이었다. 들쑥날쑥한 아이들 등교 때문에 산책을 함께 나선 게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할 말이 많았다. 주로 걱정거리는 아이들이었다. 전면 등교로 바이러스 전쟁터에 보낸 건 아닌지 불안했지만, 이젠 좀 내려놔야 할 듯했다. 우리 부부가 별일 없다면 아이들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이다.

걷는 동안 불안을 내려놓고 걱정과 거리두기를 연습했다.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읽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된다면, 아이도 스스로 자신의 힘을 키워갈 거란 기대도 조심스럽게 했다.


공원 안은 며칠 만에 밝아진 듯했다. 겨울 준비를 끝낸 나무들의 앙상해진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훤히 보였다. 공원 바닥은 온갖 낙엽들이 깔려 있었다. 가는 곳마다 알록달록 낙엽이 만든 패턴을 보느라 산책이 아닌 낙엽 구경에 가까웠다.

청 단풍잎이 겹겹이 쌓인 위에 초록 오동잎이 하나 날아와 떨어졌다. 플라타너스 나무는 급하게 낙엽을 떨군 듯 싱그럽고 선명한 잎을 모두 쏟아내 색종이처럼 보였다. 작은 단풍잎은 노랑, 빨강, 주황색으로 플라타너스 잎 주변에 섞여 작은 별처럼 반짝였다. 떨어진 백합(튤립) 나뭇잎은 반은 노랗고 반은 초록이었다. 다 물들기 전에 떨어져 섭섭할지 모르지만, 내가 본 낙엽 중에 가장 매력적이었다.

원에 산처럼 쌓인 낙엽 봉투는 쓸어 담은 분들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졌다. 지난여름 시원했던 나무 그늘의 양은 그보다 더 컸지만, 낙엽은 이제 떠날 채비가 된 듯했다.

나뭇가지에 걸린 목련나무 낙엽을 찾았다. 탐스러운 꽃으로 봄을 시작하는 목련이 떨어뜨린 낙엽은 얼굴을 가리고도 남았다.


책상에 쌓아놓은 책들을 편집하여 쓴 책은 뚱뚱한 거위처럼 보인다. 인용문으로 포식하고 주석을 과식해서 몸이 무겁다. 반면 걸으면서 구상하는 사람은 얽매인 데가 없어 자유롭다. 그의 사유는 다른 책의 노예가 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사유에 의해 무거워지지도 않는다.
- 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발로 사유하는 철학> 중에서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의 한 부분이다. 걷는 것에서 자신만의 사유를 찾은 작가들의 세계를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걷기는 스포츠가 아닌 스스로의 삶을 여행하는 시도였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작은 여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편과 나는 공원 산책을 좋아한다. 나무가 많은 공원을 따라 걷다 보면 하루를 시작할 힘이 솟는다. 동네를 오가는 산책이지만 리 부부에겐 거창한 의식처럼 중요하다. 각자 산책로를 즐기는 방법은 르다. 내가 꽃을 찍느라 홀로 공원을 누비 동안, 남편은 트랙을 돌며 운동을 다. 사계절을 걸어도 늘 다른 풍경이 날 설레게 한다. 꽃이 피고 지는 익숙한 풍경도 있지만, 전에는 보지 못한 생경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찬 바람을 피하느라 주머니 속에서 손을 못 빼던 남편이 어느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유난히 하얀 손은 부지런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영감이 떠오른 모양이다.


매일 걷던 산책로인데,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지 않고 싶었다. 나란히 걷다 하다 말고 우리 부부는 각자 뭔가에 빠졌다. 낯선 곳에 온 듯 자유게 낙엽 여행을 하고 있었다.

친 모터 소리를 내는 낙엽 치우는 기계가 나타나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떨어진 낙엽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그러나 저러나 남편은 낙엽으로 시를 쓰려나, 소설을 쓰려나 모르겠다. 한동안 꼼짝 못 했던 우리는 산책할 시간을 그리웠나 보다. 어쩌면 우린 두발로 사유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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