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쓰고 싶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든 나든 누구든, 내 이야기로 쓸 수 있어야 했다. 내 글엔 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들레꽃이 장미꽃 인척 할 수 없고, 장미꽃인데 동백꽃처럼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 마음에서 피어나는 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성미 때문인지, 내가 맞다고만 하는 고집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브런치에서 글을 발행하고, 다른 글들을 읽으면서 배울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매일 배운 것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
작가 박완서 선생님은 자기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쓴 작가로 불린다. 그녀의 글에선 이야기를 조곤조곤하듯 인생의 진솔함이 묻어져 나온다.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맞아 맞아"라고 저절로 맞장구를 하기도 했다. 요즘 들어 왜 글을 쓰려고 했는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좋은 작품을 읽다 보면 글을 쓰지 않아도 위안을 얻으니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잘 모르고 시작해서 일까? 쓸수록 차디찬 겨울바람처럼 냉정했고, 떨치고 싶은 것들이 몰려왔다.
글은 말보다 더 예리했다. 글을 쓸수록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부족한 것과 약한 것부터 먼저 드러났다. 숨기고 쓰려면 글이 써지지 않았다. 예민한 나, 감정적인 나, 냉소적인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쓰고 싶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나를 모두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글로 쓰면 되니까 말이다.
겨울을 견뎌야 하는데, 아직 남은 가을을 만끽하며 커피 한잔이 마시고 싶었다. 쓴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동네 편의점에서 산 아메리카노에 감동받았다. 모든 것을 피해서 갔는데 커피를 마시는 동안 거친 찬바람이 귀찮게 했다. 집에서도 공원에서도 여유 있는 커피를 마시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커피는 그렇게 마시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마시는 건 서두르기 위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봄을 미리 준비하는 기분을 내고 싶었다.
어둠처럼 쳐들어온 겨울은 나를 주저앉게 하지만, 꽃이 없는 계절은 글만 쓰라고 남겨둔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아등바등거려봐도 겨울은 지나게 두어야 하니 방법이 없다. 가지마다 겨울눈을 숨기고 있는 나무처럼 '따뜻한 날이 오기만 해 봐라'를 속으로 외치고 있다. 언젠가 봄은 내게 찾아 올 테니까 말이다.